손가락 하나로 생성된 완벽한 미남미녀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채운다.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피부, 황금비율로 빚어낸 이목구비. 2026년의 인류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이미지를 공기처럼 흔하게 소비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생성형 AI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붓 한 번 잡지 않고도 머릿속 상상을 매끄러운 텍스처로 구현해 내는 기술 앞에 경탄했다. 인류는 드디어 결점 없는 아름다움을 손에 넣었다고 믿었다.

완벽의 인플레이션, 너무 흔해진 아름다움
그러나 그토록 갈망했던 기술적 완벽함이 일상이 된 지금, 예술의 최전선에서는 기이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정작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AI가 선사하는 매끄러운 미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대신 그들은 뭉개지고,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캔버스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지난 2월 5일, 노르웨이 쿤스트실로 미술관에서 열린 에드바르 뭉크의 전시 풍경은 이러한 시대적 갈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긴 줄을 서가며 사람들이 마주하려 했던 것은, AI가 1초 만에 계산해 낸 화려한 판타지가 아니었다. 뭉크가 고통 속에서 긁어내듯 그린, 눈코입이 뭉개지고 절규하는 못생긴 얼굴들이었다.
이 현상은 비단 거장의 회고전에서만 목격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서울 삼청동과 한남동 갤러리를 채운 2030 신진 작가들의 캔버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그림 속 인물들은 어딘가 뒤틀려 있고, 물감은 거칠게 엉겨 붙어 있으며, 표정은 우울하거나 기괴하다.
희소성의 이동, 기술을 압도하는 인간 서사의 힘
우리는 왜 기술이 주는 매끄러운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다시 붓 자국이 선명한 거친 육체로 회귀하는 것일까. 대중이 느끼는 갈증의 본질은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것이 품고 있는 희소성의 변화에 있다.
초기에 우리는 AI가 보여주는 결점 없는 피부와 완벽한 대칭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 완벽함이 보편화되자, 역설적으로 그것은 더 이상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경제학의 원칙은 예술 시장에서도 유효하다. 흔한 것은 가치가 떨어지고, 귀한 것은 가치가 오른다. 2026년, 매끄러운 이미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짜에 가까운 상수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컬렉터들과 관객들의 기준은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기술이 찬사를 받았지만, 이제 그 영역은 AI가 대체했다. 대신 사람들은 작가의 삶과 고뇌가 묻어나는 서사의 발자국을 찾아 나섰다. 붓질 하나에 담긴 우연과 감정, 그리고 작가의 인생이 빚어낸 고유한 이야기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복제할 수 없는, 가장 희소하고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유한함의 증명, 픽셀이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무게
아트마저 매거진(Artmajeur Magazine)과 이든 갤러리 뉴스(Eden Gallery News) 등 주요 매체들이 분석했듯, 디지털 아트의 홍수 속에서 다시 물성이 강조된 회화나 작가의 진정성 있는 스토리가 담긴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필연적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지적했듯, AI 기술이 에이전트의 형태로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할수록, 우리는 가장 원초적인 감각을 그리워하게 된다.
AI는 늙지도, 다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알고리즘이 생성한 매끈한 얼굴에는 시간의 풍화와 삶의 무게가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와 붓질은 다르다. 우리는 늙고, 상처받고, 주름진다. 관객들은 캔버스 위에 두껍게 쌓인 물감의 요철에서, 그리고 의도치 않게 튀어 나간 붓 자국에서 작가가 고뇌하며 보낸 시간을 물리적으로 체감한다. 이것은 매끈한 디지털 화면에서는 절대 만져볼 수 없는, 우리의 유한함이 빚어낸 인간성의 증거다.
존재의 공명, 0과 1 사이에는 없는 뭉클한 감동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기술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인간성(Humanity)의 재발견이다. 우리는 완벽한 가상 모델에게는 없는 삶의 치열한 질감과 뭉클한 감동을 그리워한다. 뭉개진 얼굴의 초상화 앞에서 우리가 발길을 멈추는 이유는, 그 거친 불완전함 속에서 비로소 상처받지 않는 영혼은 없다는 깊은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매끄러운 인공보다 거친 실재가 우리를 울리는 시대다. 이것은 단순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다. 기술만능주의 시대에 우리가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확인하기 위해 선택한 본능적인 생존 전략이자 미적 선언이다.
세상은 눈부신 LED 화면으로만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거칠고 투박한 붓질 속에 담긴 인간의 진심, 그 고유한 불완전함이 우리를 서로에게 닿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찌그러진 얼굴을 사랑할 것이고, 그 빈틈에서 서로의 온기를 발견할 것이다. 그것이 알고리즘은 결코 계산해 낼 수 없는, 인만의 빛나는 영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