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석 남형우 공적비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해방 후 친일파가 주요 정책을 결정해서 그런지, 한국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대우를 잘 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독립운동가 생가나 묘소 의거를 일으킨 장소에 대한 보존이 잘되지 않는 것이다.
독립운동가 생가도 남아 있는 곳이 몇 없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공적비 정도이다. 그것도 생전에 고인이 살던 장소나 의거와 관련된 장소와 동떨어진 곳이 많다. 고령에 반민특위원장을 지낸 영주 김상덕 선생님을 찾았다가 우연히 다른 독립운동가 공적비도 찾았다.
‘연조공원’이라는 체육공원 한 귀퉁이에 다물단 유석 남형우 선생님을 발견했다. ‘다물단’은 일제강점기 단재 신채호, 유자명, 우당 이회영, 이호영 선생님이 만든 독립운동 단체이다.
‘다물’은 고구려 말로 ‘옛 땅을 되찾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구려인들이 생각했던 옛 땅, 고조선의 땅을 되찾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쟁을 나갈 때 쓰이던 구호이기도 했다. 또한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도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처럼 이름난 역사학자가 아니라도 역사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그래서 역사의식이 남달랐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자기 모든 것을 바쳐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역사를 아는 만큼 한민족과 그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제대로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독립운동가가 후학을 양성하려 했고, 이때 한민족 역사와 글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었다.
연조 공원 주차장을 내려서 올라가는 순간, 공원을 울리는 뽕짝 음악 소리에 짜증이 났다. 독립운동가를 모신 공원에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공공장소에서 귀에 무언가를 꽂고 듣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왜 꼭 남들 다 들으라고 시끄럽게 듣는 것도 싫고 게다가 뽕짝이라는 게 더 싫었다.
이것도 해방 후 친일파들이 교육 문화에 주류가 된 잔재인 것 같다. 한민족 음악인 판소리 정가 등이 있어야 할 자리에 뽕짝으로 채워 넣은 부류들이 있다. 더 문제는 뽕짝을 한국 음악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 역사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문화통치가 해방 후 계속되고 있고, 한민족 전통문화는 설 자리가 좁아졌다.
여식이 세웠다는 것을 보니, 후손이 노력해서 세운 비 같다. 독립운동가 공적비를 보면 대개 후손이 노력해서 정부에 부탁하거나 뜻있는 사람이 모여서 세운 경우가 많다. 정부가 당연히 해 줘야 할 일을 어렵게 부탁해서 세우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가 많은 것도 가슴이 아프다.
시조는 독립운동의 어려움을 담고 있다.
담은 비저 문어지고
지게는 바람마자 뚤어졌네
찬뎡지 빈도마에 압산새 왓다간다
아회야 배곱다 말고 글 일거라
담은 비에 젖어 무너지고/지게는 바람 맞아 뚫어졌네/차가운 정지(부엌) 빈 도마에 앞산 새 왔다 간다/ 아이야 배고프다 말고 글 읽거라
비에 접어서 무너진 담, 바람 맞아 쓰기 어렵게 된 지게, 식자재가 없어 불을 못 피는 부엌, 배고픈 아이. 이런 모습은 많은 독립운동가 삶에 스며들어 있던 것이다. 명동 땅을 거의 소유하고 있던 이회영 6형제도 독립운동을 위해 가산을 처분한 후 망명했다. 처분한 가산은 신흥무관학교라든지 대부분 독립 자금으로 사용해서 나중에는 집안 모두 돈이 없었다고 한다. 아사로 죽은 분도 있고, 옷을 저당 잡혀서 외출 못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물단 활동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밀정 김달하 처단이 있다. 친일파 김달하는 중국에서 활동 중인 독립운동가를 포섭하여 조선으로 같이 돌아가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했다. 이를 알고 다물단과 의열단이 협력하여 처단했다.
출처: KBS 시사기획 창 -밀정 2부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참고로 김달하와 관련된 인물 중 김활란이 있다. 김활란의 언니 김애란이 5명의 자식이 있는 김달하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고 한다. 즉 김활란의 형부가 김달하이다. 김활란의 우월(又月)이라는 호를 지어준 이가 김달하라고 한다.

출처: 한겨례21(https://h21.hani.co.kr/arti/COLUMN/COLUMN/47751.html) 김달하와 김애란의 약혼 사진, 가운데가 김활란
현재 김달하의 후손은 사학법인을 소유하고 잘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