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의 삶에 대한 글을 읽고, ‘고난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 오래 머물게 된다. 그는 일본 근대가 낳은 각성된 양심이자, 신앙을 이유로 제도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람이었다. 천황 숭배가 의무이던 시대에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러일전쟁의 열광 속에서도 전쟁 반대를 외쳤다. 그 선택의 대가는 실직과 가난, 사회적 고립이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 대신 고독을 택했고, 다수의 명분이 아니라 양심의 언어로 말하는 길을 걸었다. 시대의 중앙이 아니라 변두리에 서 있되, 그 자리에서 예언자의 목소리를 잃지 않았던 사람, 그것이 내가 만난 우찌무라 간조의 얼굴이다.
그의 사상은 바다를 건너 조선의 청년들에게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김교신, 함석헌, 손두용 같은 이들이 일본 유학 시절 그의 문하에서 성서를 배웠다. 그들이 배운 것은 조직신학의 체계나 교리의 조항이 아니라, 제도보다 양심을 앞세우는 신앙의 태도였다. 김교신은 이 신앙을 조선의 현실에 옮겨와 잡지 『성서조선』을 창간했고, 그로 인해 투옥과 강제 폐간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하다. 조국은 개인의 안락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아니라, 진리와 세계를 향해 책임을 지는 존재여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곧 신앙의 한 모습이라는 확신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우찌무라는 자신의 신앙을 두 개의 J, 예수(Jesus)와 일본(Japan)으로 설명했다. “예수 없는 일본은 두렵고, 일본 없는 예수는 내게 없다.” 이 말에는 그의 신앙과 애국관이 동시에 드러난다. 그에게 애국은 복종이 아니라 책임이었고, 사랑은 침묵이 아니라 비판이었다. 신앙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길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양심으로 서는 일이라 그는 믿었다. 조국이 잘못된 길로 향할 때, 가장 먼저 고통을 감수하며 말하는 것, 그것이 곧 신앙의 증언이었다. 그가 후세에 남길 가장 확실한 유산은 돈도, 명예도, 지식도 아니라 ‘용기 있는 고결한 삶’이라고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결국 말이 아니라 태도로 기억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태도를 떠받친 가장 깊은 힘이 바로 평생 강조한 ‘감사’였다. 우찌무라의 감사론은 부드러운 위로나 도덕적 훈계라기보다, 오히려 냉철한 경고에 가깝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벌하고자 하실 때는 그 사람의 마음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버린다”고 했다. 여기서 감사는 단순한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의 중심이며, 무너짐 속에서도 인간으로 남게 하는 마지막 힘이다. 감사를 잃은 인간은 중립에 머물지 않는다. 그 자리는 곧 원망과 불평, 피해의식이 채운다. 같은 현실을 보고도 어떤 이는 의미를 발견하고, 어떤 이는 모욕만을 본다.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우찌무라는 감사를 잃는 순간, 인간은 이미 벌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감사는 머리의 개념이 아니라 삶의 언어였다. 그는 사랑하는 딸 루츠코를 병으로 먼저 떠나보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상실 앞에서 그는 절망 대신 기도를 택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딸의 장례식 자리에서조차 그는 하나님께 딸을 허락하신 시간 자체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그 감사는 슬픔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었다. 기쁨이 사라진 순간에도 신앙의 심지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고집에 가까웠다. 슬픔은 분명 존재했고, 고통은 쉽게 옅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고난이 이미 받은 축복까지 부정하는 죄로 이어지지 않기를 두려워했다. 우찌무라에게 감사는 눈물 속에서 빛나는 신앙의 가장 순결한 형태였다.
그는 평생 가난했고, 세속적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남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늘 비전을 향해 있었다. 그 비전은 물질적 번영의 미래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양심과 믿음을 잃지 않는 인간의 미래였다. 그는 고난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고난을 감당할 힘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확신했다. 감사는 그 힘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받은 것에 대한 응답이자, 아직 오지 않은 시련까지도 책임지겠다는 믿음의 언어였다.
그의 묘비명은 놀라울 만큼 소박하다.
“나는 일본을 위해, 일본은 세계를 위해,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짧은 이 문장에는 개인에서 조국으로, 조국에서 세계로, 세계에서 신으로 이어지는 책임의 사슬이 담겨 있다. 그는 조국을 사랑했으나 신격화하지 않았고, 신을 믿었으나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았다. 이 묘비명은 고난과 실패를 통과한 한 인간이 끝내 도달한 자리, 곧 자기중심을 내려놓고 감사와 책임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된 삶의 태도를 압축한 고백이다. 거창한 업적의 나열도, 찬사의 문장도 없다. 다만, 김교신과 함석헌의 삶을 통해 우리는 그 침묵의 의미를 더듬어 읽게 된다. 말보다 삶으로, 제도보다 양심으로 신앙을 증언한 한 인간의 흔적이 그 짧은 문장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감사’가 있었다.
우찌무라 간조는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고난 앞에서 우리는 과연 감사할 수 있는가. 아침에 눈을 뜨는 일, 누군가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는 일,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감사는 풍족함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출발점이다. 그것은 많이 가진 자의 여유가 아니라, 무너지는 순간에도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태도다. 삶이 원망스러워질 때, 세상이 유난히 불공정하게만 보일 때, 우리는 조건을 바꾸기 전에 먼저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혹시 내 안에서 감사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지는 않은가. 감사를 회복하는 일은 곧 신앙을 회복하는 일이다. 감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믿음의 뿌리도 설 수 없다. 고결한 삶은 거창한 성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늘의 고난 앞에서도 감사하려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결단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 결단을 잊지 않으려 한다. 믿음이란 그저 입술로 고백하는 일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 감사를 새롭게 배우는 일임을 기억하며, 삶이 평탄하지 않더라도 원망보다 감사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힘써야겠다.
[문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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