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백하구려 : 백하 김대락 독립운동가 옛집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 건너 내앞마을이 있다. 의성 김씨 집성촌이기도 하고, 일송 김동삼, 백하 김대락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동네이기도 하다.
‘내앞마을’ 이름부터 정겹다. 일제강점기 강제로 일본식 한자로 이름을 바꾼 뒤 원래 이름을 찾지 못한 동네가 한국에 많다. 그러나 여기 ‘내앞마을’은 아름다운 우리말로 이해하기 쉬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을 앞에 작은 내가 흐르고, 그 내를 두고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과 마주 보고 있다.
오늘은 ‘백하구려(白下舊廬)’, 백하의 옛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백하 김대락(金大洛) 독립운동가 집 앞에 잠시 들렀다 왔다. 현재 후손이 거주하는 공간이라 자세히 보지는 못하고 조심스럽게 보고 인사를 드리고 왔다.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집안이다. 집의 주인인 백하 김대락 선생님은 유학자 보수이지만, 자신의 집을 신식 교육을 하는 ‘협동학교’에 기꺼이 내가 준 분이다. 진정한 보수는 너무 잘 알기에 유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는 지점이다.
1911년 65세 나이에 150명 일가를 이끌고 서간도 유하현(柳河縣)으로 망명하셨고, 백하구려 사랑채를 처분한 것을 비롯해 자기 재산을 모두 털어 독립자금에 바쳤다. 망명 4년 후 70세에 순국하셨다. 선생님이 망명 후 ‘백하일기’를 꾸준히 기록하셨고, 이 글은 독립운동 자료로 소중히 쓰이고 있다.
김대락의 막내 여동생 김락 선생님은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만 18세에 퇴계 이황의 후손인 이중업에게 시집을 갔다. 시아버지 이만도는 단발령과 을미사변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켰고 단식으로 돌아가셨다. 남편 이중업은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는 데 참여했으나 실패했고 투옥되었다. 그리고 중국에 보내는 청원서를 보내려다 1921년 병사하였다.
김락의 집안은 대한광복회 총 사령관인 박상진을 집에 숨겨주는 일도 했다. 이 인연으로 맏아들 이동흠은 대한광복회에 가담해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둘째 아들 이종흠 역시 독립 자금 모금 활동에 참여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김락 선생님 자신은 58세에 삼일 만세 운동을 하다 붙잡혀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실명하고 살았다. 남편과 두 아들 옥살이 수발도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풀려난 후 자살 시도를 두 번이나 할 정도로 삶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녀의 딸은 흔히 파락호로 알려진 김용환에게 시집을 갔다. 집안의 재산을 노름판에 날렸다고 파락호라 불렸지만, 현재 가치로 300억 정도 되는 돈이 독립군 군자금으로 쓰였다고 한다. 해방 후 1946년 임종 무렵 독립군 동지 하중환이 알리자고 했지만, 조용히 밝히지 않고 숨을 거두셨다.
그리고 김대락의 여동생 중 가장 위인 김우락 선생님도 있다. 이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님과 결혼하여 종가집 며느리가 되었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석주 이상룡 선생님은 망명하셨고, 이어서 김우락 선생님과 나머지 가족도 회인현 항도촌으로 이주했다.
독립운동을 하는 집안에서 모든 안살림을 떠맡았다. 가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부으며 만주에서 고생하셨다. 이 과정은 손주 며느리 허은 선생님의 ‘내 귀엔 아직도 서간도 바람소리가’에 잘 기록되어 있다. 1932년 남편 순국 후 일경의 감시를 피해 병든 몸으로 어렵게 안동으로 돌아왔고 다음 해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백하 김대락의 조카 중 우리가 잘 아는 독립운동가가 있다. 일송 김동삼 선생님이다. 만주벌 호랑이라 불릴 만큼 높은 기개를 가졌던 장군이다. 만주로 떠나기 전에도 신민회 그리고 대동청년단에 참가하여 독립운동했다. 그리고 1920년부터 서로군정서 참모장으로 지청천 장군과 함께 청산리대첩에 참여했다.
청산리 전투는 승리했으나, 일본은 보복으로 경신참변을 일으켰고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이 과정에서 김동삼 선생님의 동생 김동만(삼원포 삼광학교 교장)이 살해당했다.
그리고 김동삼 선생님은 1931년 일본에 피체 되어 고문과 열악한 환경 가운데 7년 옥고 끝에 순국하셨다.
더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지만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만 추려 간단히 소개했다. 독립운동가는 누구나 쉽지 않은 삶을 살았고, 누구든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바쳐서 최선을 다했다. 너무 힘들었기에 중간에 변절한 이도 있다. 그렇기에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힘들게 산 그분들의 노고를 존경하는 것이 후손이, 아니 인간이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