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대규모로 공습하면서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이 확인되었고, 이후 헤즈볼라까지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에 가세하면서 충돌은 사실상 다자간 전면 충돌의 문턱까지 다가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작전이 수 주간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하며,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공격을 계속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위기가 결코 ‘먼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나라는 원유의 70%, LNG의 2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비상상황 점검회의를 통해 유조선 운항, 우회 항로, 대체 물량 확보 방안을 점검하고 있다. 중동 지역이 우리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기준 3% 안팎에 그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유가와 물류비 상승을 매개로 수출, 물가, 환율, 금융시장 전반을 동시에 흔드는 ‘복합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정부가 이번 사태를 재외국민·안보·경제의 3축 위기로 인식하고 범정부 대응에 나선 방향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3월 2일 관계장관회의와 3월 3일 국무회의를 잇달아 주재하며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비할 것과, 국민이 과도하게 불안해하지 않도록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정보 공유를 주문했다. 그러나 국가위기관리의 본질은 안심용 발언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고 한발 앞서 준비하는 냉정한 결단에 있다. 위기 앞에서 낙관은 미덕이 아니라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외교·안보 대응도 빠르게 가동되고 있다. 외교부는 2월 28일 재외국민보호대책반을 가동하고, 주이란대사관·주이스라엘대사관 및 인근 공관과 합동 상황점검회의를 열어 우리 국민 안전대책을 점검했다. 3월 2일 저녁 기준 중동 10개국 일대에는 약 1만7천 명의 우리 국민이 체류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방부 역시 장관 주재 상황평가회의를 열어 해외 파병부대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24시간 군사대비태세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교민 보호’는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최소 책무이다.
경제 대응도 보다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수개월 분의 비축유와 법정 의무량을 웃도는 가스 재고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사태 장기화로 민간 재고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질 경우 여수·거제 등을 포함한 전국 9개 비축기지의 비축유 방출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중동 외 지역 대체 물량 확보, 우회 항로 검토, 피해 기업 유동성 지원, 물류비 지원, 필요시 임시 선박 투입도 준비 중이다. 금융위원회 역시 시장 개장 전 점검회의를 통해 환율·주가·금리 변동성을 상시 점검하고, 필요하면 100조 원+α 규모의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신속히 가동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제 ‘대응 의지’가 아니라 ‘집행 속도’가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회의와 브리핑만으로 위기가 관리되지는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다 구체적이고, 국민이 확인 가능한 실행 계획이다. 첫째, 교민과 주재원 철수 기준, 수송 동선, 현지 보호조치가 결합된 ‘실제 작동 가능한’ 대피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그 대강을 국민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 둘째, 에너지 비축 방출 기준과 수입선 다변화 로드맵을 시장과 국민에게 제시함으로써, 기업과 가계가 최악의 경우를 가늠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중소·중견 수출기업, 항공·해운업계, 물가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을 선제적으로 집행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 위기관리는 상황을 설명하는 기술이 아니라, 충격이 가계와 기업으로 번지기 전에 흡수하는 능력이다.
전쟁은 언제나 가장 먼저 생명과 일상을 파괴한다. 국가는 이때 국민에게 막연한 안심을 속삭이는 조직이 아니라, 고도의 불확실성을 질서와 예측 가능성으로 전환하는 체계여야 한다. 중동의 포성이 커질수록 대한민국 정부의 책무는 더 무거워진다. 지금 이 정부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준비와 집행의 실체이다. 그 실체가 바로 국민 신뢰의 바탕이자, 국가 역량의 진짜 크기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