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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評] 3월, 해빙 / 한길

"불이 아니라 낮아짐이 세상을 연다" 3월의 물소리가 전하는 위대한 역설

"왜 봄은 낮은 곳에서 오는가?" 추위를 견딘 당신에게만 들리는 희망의 소리

딱딱한 세상에 던지는 고드름의 눈물 한 방울, 3월의 고요한 혁명이 시작된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3월, 해빙 / 한길

 

얼음 바다의 시선이

녹기 시작한 땅의 어깨에 닿는다

 

가느다란 햇살 하나

닫혀 있던 지평선을 두드린다

 

지붕 끝 고드름이

맑은 눈물처럼 떨어져

기다리던 흙을 적신다

 

문을 여는 것은

불이 아니다

 

몸을 낮추어

흐르기로 하는 것

 

얼음의 고요한 결심

 

그래서 3월에는

긴 추위를 견딘 사람만이 듣는다

 

어딘가에서

처음 시작되는

 

물의 소리를

 

=========

 

당신이 녹아야 세상이 흐른다: 3월, 해빙이 건네는 고요한 결심의 초대

 

봄은 요란한 나팔 소리를 타고 오지 않는다. 그것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의 어깨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가느다란 햇살 한 줄기, 혹은 지붕 끝에서 흙 위로 툭 떨어지는 고드름의 맑은 눈물 한 방울에서 시작된다. 한길의 시 ‘3월, 해빙’은 이 기적 같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우리 삶의 굳어버린 문을 여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시인은 3월의 해빙을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하나의 ‘결심’으로 해석한다. "문을 여는 것은 불이 아니다"라는 짧은 문장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서늘한 통찰이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뜨거운 열정이나 강한 힘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인은 단호하게 말한다. 닫힌 세상을 여는 것은 타오르는 불길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낮추어 흐르기로 마음먹은 얼음의 '고요한 결심'이라고 말이다.

 

낮아짐, 그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용기

 

얼음이 물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견고한 형체를 포기하는 일이다. 날카로운 모서리를 깎아내고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 가는 겸손이다. 시인은 이 과정을 ‘몸을 낮추어 흐르기로 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의 벽을 허물고 타인에게 흘러가기 위해선, 내가 먼저 녹아내려야 한다는 영적 진리를 시적 형상화로 빚어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는 3월의 풍경화인 동시에, 고난의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를 향한 깊은 위로이자 호소다. 삶의 겨울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마음은 얼음 바다처럼 차갑고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얼음조차도 햇살 한 줄기에 땅의 어깨를 만지며 해빙을 준비하듯, 우리 안에도 흐르기 위한 용기가 숨 쉬고 있음을 시인은 일깨운다.

 

견딘 자만이 들을 수 있는 희망의 첫소리

 

마지막 대목에서 시의 울림은 절정에 달한다. "긴 추위를 견딘 사람만이 듣는다"라는 구절은,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통과해 본 자만이 비로소 생명의 미세한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3월의 물소리는 모든 이에게 들리는 소음이 아니다. 그것은 얼어붙은 시간을 견디고, 자신을 녹여 흐르기로 작정한 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희망의 암호’와 같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겨울을 지나고 있다. 경제적 결핍, 관계의 단절, 혹은 영적인 메마름 속에서 지평선은 여전히 닫혀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기억하자. 해빙은 이미 시작되었다. 당신이 오늘 내비친 작은 미소, 타인을 위해 낮춘 어깨, 그리고 묵묵히 견뎌온 그 시간이 바로 세상을 녹이는 3월의 햇살이다.

 

이제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 마음 어딘가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을 그 맑은 물소리를. 그것은 당신이 이 긴 추위를 잘 견뎌냈다는, 봄이 보내는 가장 다정한 격려다.

 

작성 2026.03.05 12:57 수정 2026.03.05 13:09

RSS피드 기사제공처 : 중동 디스커버리 / 등록기자: 김요셉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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