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유학(三漢儒學)은 “삼류 한학자의 생활 유학”의 줄임말로, 김동택 선생님의 칼럼 코너입니다. 김 선생님은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했습니다. 현재는 의료기기 배달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삶과 학문의 경계를 허무는 ‘생활 유학’을 지향하며, 일상에서 길어 올린 성현의 지혜를 기록합니다. 스스로를 ‘삼류’라 낮춰 부르지만, 그가 전하는 삶의 통찰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토요일 오전 오늘도 여느 토요일처럼 딸의 출근을 위해 차를 몰았다. 건널목 위에에 어김없이 매달린 CCTV 카메라들을 보며 문득 맹자(孟子)의 한 구절을 떠올려 봅니다. '촉고불입오지(數罟不入洿池)', 즉 "촘촘한 그물을 연못에 던지지 않는다"는 옛 성현의 가르침입니다.

본래 이 말은 어린 물고기까지 싹쓸이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의 풍요를 대대로 누리게 하려는 군주의 자애로운 정치를 뜻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도로 위를 빽빽하게 메운 디지털 카메라는 마치 그 '촘촘한 그물(촉고)'이 되어, 숨 가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일상을 매섭게 감시하는 듯합니다.
촘촘해서 서글픈 법의 그물
잠깐의 방심이나 생계를 위한 절박함 끝에 날아오는 과태료 고지서는 나와 같은 평범한 서민들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입니다. 질서와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설치된 수많은 카메라는, 때로 법의 온기보다는 엄격한 통제의 시선으로 우리를 마주합니다. 맹자가 말한 '그물을 촘촘히 치지 않는 마음'이 백성을 아끼는 배려였다면, 지금의 法網(법망)은 혹여 성실한 이들의 주머니를 먼저 비우는 차가운 도구가 된 것은 아닌지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집니다.
힘의 크기에 따라 넓어지는 그물코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이 그물의 '공정함'에 대한 의문입니다. 도로 위 서민들의 작은 실수에는 1c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카메라가, 어찌 된 일인지 거대한 자본과 권력의 위반 앞에서는 그 그물코를 한없이 넓히곤 합니다.
교묘한 법리와 막강한 힘을 가진 이들이 유유히 그물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묻게 됩니다. 이 촘촘한 그물은 과연 누구를 위해 던져진 것일까요? 맹자가 경계했던 '백성을 곤궁하게 하는 정치'가 오늘날에는 법의 불균형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법의 본질, 통제가 아닌 '공생'의 약속
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든든한 울타리여야 합니다. 맹자가 제안한 그물의 절제는 물고기를 보호하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공생(共生)'의 지혜였습니다. 도로 위의 카메라 역시 시민을 적발하고 벌금을 매기는 수단이기에 앞서, 모두의 안전을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는 따스한 눈길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물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법망이 힘없는 이들에게만 가혹한 '數罟(촉고)'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 그물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법의 그물이 촘촘함보다 '공정함'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도로 위에서 성현이 꿈꾸었던 진정한 정의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