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다
세계 경제에서 단순한 원칙처럼 여겨졌던 공급망 최적화와 비용 절감 전략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2026년 3월 16일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NUS) 비즈니스 스쿨에서 발표된 학술 논문에 따르면, 지정학적 긴장이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의 안정성과 회복력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데이터 기반의 심층 분석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실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글로벌 공급망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그 과정에서 저비용 고생산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국제 정세는 이러한 기본 전제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제 최저 비용의 생산지를 찾는 대신,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공급망 확보에 우선순위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변화의 배경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여러 지정학적 사건이 있습니다. 이 전쟁은 에너지와 곡물 시장을 포함한 글로벌 핵심 자원 공급망에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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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급격히 낮추고 대체 공급원을 찾는 과정에서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 불안정을 경험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미-중 무역 분쟁은 양국 간 교역 의존도를 줄이려는 의도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생산 기지를 자국으로 다시 이전하는 리쇼어링(reshoring)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중동 지역의 지속적인 긴장은 원유 및 천연가스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협하며 다수의 산업 분야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과 수에즈 운하 같은 주요 운송 경로의 안전성이 위협받으면서, 기업들은 더 긴 우회 경로를 선택하거나 추가적인 보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이들 사건은 개별적으로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전 세계가 공급망을 관리하고 설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NUS 연구진은 이러한 운송 경로 안전성 문제가 원자재 조달과 생산 거점 다변화 전략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데이터를 통해 입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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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학술 논문은 반도체, 에너지, 희토류와 같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원의 공급망을 중심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구체적으로 추적했습니다. 반도체 분야는 세계적인 칩 부족과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진 사례입니다.
대만과 중국 사이의 긴장 고조는 반도체 제조 공정의 중심지에 대한 안정성 걱정을 부채질하며, 미국과 EU는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투자 확대를 추진 중입니다. 미국은 CHIPS Act를 통해 반도체 제조 시설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EU 역시 유럽 칩스 법안(European Chips Act)을 통해 2030년까지 글로벌 반도체 생산의 20%를 역내에서 담당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효율성에서 안정성으로, 공급망의 패러다임 전환
희토류 역시 미-중 경쟁의 핵심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중국의 높은 시장 점유율을 견제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은 다른 생산지와 조달 경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정제 능력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어, 전기차 배터리, 풍력 발전기, 첨단 전자기기 제조에 필수적인 이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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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호주, 캐나다, 베트남 등에서 새로운 희토류 채굴 및 정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자원의 공급망 재구성은 단기적으로는 비용 상승과 효율성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회복력을 강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기업들은 지정학적 사건들에 대응하기 위해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는 믿을 수 있는 정치적 동맹국들 사이에서만 생산과 교역을 진행하는 접근 방식으로, 기존 글로벌 공급망이 목표로 삼아온 다변화 전략을 상당 부분 포기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대외 환경의 불안정성이 기업들에게 '효율성'보다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형 기술 기업들은 생산 기지를 인도와 베트남으로 옮겨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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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아이폰 생산의 일부를 인도로 이전했으며, 삼성전자는 베트남에서 스마트폰과 전자제품 생산을 대폭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업 경영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국가 정부들 역시 영향을 받고 있는 중대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는 단점도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공장이 이전되고 새로운 공급망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생산 비용이 급격히 증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새로운 지역에 제조 시설을 구축하고, 현지 인력을 교육하며, 물류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합니다. 또한 지역 내 생산으로 인한 기술과 자원의 집중은 그 자체로 높은 위기와 리스크를 내포합니다. 이를테면, 특정 지역의 자연재해나 정치적 변화가 글로벌 공급망 환경에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된 바 있습니다.
반도체 생산이 대부분 대만에 집중되며 발생했던 공급 병목 현상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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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대만의 가뭄으로 반도체 공장의 물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전 세계 자동차 및 전자제품 생산에 연쇄적인 지연이 발생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정학적 긴장이 한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한국은 반도체와 희토류, 그리고 첨단기술 분야에서 강력한 입지를 가지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공급망 안정성 논의에서 핵심 국가로 부상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한국 기업들은 리쇼어링 혹은 프렌드쇼어링 트렌드에 발맞춰 생산 및 공급 전략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급망 재편이 가져올 기회와 도전
동시에, 한국 정부는 기업들이 해외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책적 지원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는 수출 보험 확대, 해외 투자 보호 협정 강화, 전략적 동맹국과의 공급망 협력 체계 구축 등을 포함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의 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 관계를 확장할 필요도 있습니다.
특히 배터리, 수소,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서 핵심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것이 시급합니다. NUS 연구진은 또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흥 시장의 기회와 도전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분석을 제시했습니다. 베트남, 인도, 멕시코 같은 신흥 시장 국가들은 중국을 대체하는 생산 거점으로 급부상하면서 새로운 투자와 기술 이전의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동시에 인프라 부족, 숙련 노동력 부족, 정치적 불안정성 등의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도 이러한 신흥 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현지 리스크를 면밀히 평가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LG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은 이미 인도와 베트남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구축하며 이러한 트렌드에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경제 환경 속에서 지정학적 긴장은 공급망 안정성을 위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습니다. 생산 효율성에서 안정성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전 세계적으로 기업과 정부 모두에게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시합니다.
2026년 3월 16일 발표된 NUS의 학술 논문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전환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 접근 방식을 개발해야 하며, 이는 원자재 조달의 다변화, 생산 거점의 전략적 배치, 운송 경로의 안전성 확보를 모두 포함하는 종합적인 계획이어야 합니다. 한국의 경제 이해관계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국내 산업과 소비자에게 어떤 형태로 영향을 끼칠지 면밀히 검토하고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생산 비용 증가와 제품 가격 상승이 불가피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국가 경제 안보의 핵심 요소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이 변화가 미래 경제 구조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효율성과 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요?
이는 앞으로 10년간 글로벌 경제를 규정할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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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bschool.nus.edu.s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