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나의 모습
요즘 나는 아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아이가 하는 말, 아이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놀라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저 작은 몸 안에 어떻게 저런 생각이 담겨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사랑과 부담 사이의 감정
내년이면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아직은 내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아이지만, 어느새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시간을 바라보며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 감사함 사이로, 어느 순간 작은 마음이 올라온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조금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는 늘 나를 찾는다.
“아빠.”
그 한 마디에 나는 다시 아이 곁으로 돌아간다. 며칠 전,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시 여유를 가지던 시간이었다.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아빠, 나랑 놀아줘.” 나는 이미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마음은 달랐다. “아빠, 안 놀아주잖아. 나 심심해.” 그 말은 짧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남았다.
내 안의 기준이 만들어낸 불편함
순간 서운함이 올라왔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심코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집 아빠들은 더 바쁠 수도 있는데. 그 생각은 곧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부모님의 바쁜 일상 속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어린 시절의 나. 외로움을 익숙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시간들. 그래서 나는 다짐했었다. 내 아이만큼은 외롭지 않게 해야겠다고.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순수한가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더 따뜻한 환경, 더 많은 시간, 더 깊은 사랑. 그러나 그 사랑은 언제나 순수하기만 한 것일까. 때로는 그 안에 부모 자신의 경험과 기준이 섞이기도 한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 나와는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은 바람. 그것은 사랑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형태의 기대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심
나는 아이가 나를 닮지 않기를 바랐다. 외로움을 쉽게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충분히 느끼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랐다. 그래서 더 함께하려 했고, 더 곁에 있으려 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또 다른 바람을 품고 있었다. 조금 덜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조금 더 혼자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그것은 배려를 기대하는 마음이었지만, 결국은 나의 편안함을 위한 욕심이었다. 아이는 아직 기대야 할 나이에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아이에게 스스로 서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지금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기준과 기대를 덧씌우고 있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편안함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함께 있어주는 것의 의미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아이의 손은 나를 떠나 세상을 향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다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나를 찾아주지.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지금의 아이를 그대로 바라보자. 사랑은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오늘도 나는 이 자리에서 머문다. 지금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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