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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의 성패는 주소가 아니라 관계에 달렸다, 최병석 대표가 짚은 정착의 현실

태안 특강에서 드러난 귀촌 성공 공식, 준비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이해

농사보다 먼저 점검할 것, 은퇴 이후 삶의 설계와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태도

성급한 집 짓기보다 느린 적응이 먼저, 귀촌 실패를 줄이는 실전 정착 전략

도시 생활의 피로가 누적될수록 전원으로 향하는 시선은 더 짙어진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가까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바람은 이제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흐름으로 읽힌다. 그러나 귀촌은 풍경을 바꾸는 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막연한 기대만 안고 떠난 선택은 현실 앞에서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준비 부족으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은 귀촌이 감성보다 계획, 환상보다 이해를 먼저 요구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같은 현실을 짚는 강의가 26일 태안 백화노인복지관 소성홀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좋은세상바라기 주식회사 최병석 대표는 경영학 박사이자 농촌농촌 컨설팅 전문가로서,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놓치기 쉬운 본질을 차분하게 풀어냈다. 강의의 핵심은 단순했다. 귀촌은 집을 구하고 땅을 사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관계의 언어를 바꾸는 일이라는 점이다.

 

최 대표는 먼저 귀농과 귀촌을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개념이 비슷하게 쓰이지만 지향점은 다르다. 귀농은 농업을 생업으로 삼아 소득을 창출하는 삶에 가깝고, 귀촌은 거주 환경을 농촌으로 옮기되 건강, 휴식, 자급적 생활, 또는 농업 외의 다른 경제활동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출발부터 방향이 흐려질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는가보다 왜 가는가이다. 최 대표는 작물 선택이나 주택 계획보다 먼저 자신의 이동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은퇴 이후 삶을 장기적 흐름 안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활동이 가능한 시기와 회고의 시기, 돌봄이 필요한 시기, 그리고 홀로 생존해야 하는 시기까지 삶의 단계는 계속 달라진다. 따라서 귀촌은 현재의 취향만 반영한 결정이어서는 곤란하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감당할 수 있는 주거 구조와 생활 반경, 의료 접근성, 관계망까지 함께 설계해야 안정적인 정착이 가능하다.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도시에서는 비용을 내면 서비스가 돌아오는 구조가 비교적 분명하지만, 농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 질서와 오랜 축적 위에서 작동한다. 마을길 하나, 농로 하나에도 선주민의 시간과 희생이 배어 있다는 의미다. 최 대표는 새로 들어온 이들이 이미 만들어진 터전 위에 기대어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인식이 없다면 귀촌인은 자신도 모르게 공동체를 소비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그래서 귀촌에서 필요한 것은 무임승차가 아니라 참여의 태도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재능과 경험, 시간과 마음을 공동체와 나누는 자세가 중요하다. 도시에서 쌓은 전문성은 농촌에서도 충분히 쓰일 수 있다. 행정 경험, 교육 역량, 기획 능력, 문화 활동, 돌봄과 봉사 같은 자산은 마을 안에서 새로운 가치가 될 수 있다. 결국 귀촌의 입장권은 부동산 계약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겠다는 실천으로 마련된다는 의미다.

 

정착 초기 가장 흔한 실수로는 성급한 부동산 결정이 꼽혔다. 최 대표는 첫해에는 무리하게 땅을 사거나 집을 짓지 말라고 조언했다. 농촌 생활의 리듬과 계절별 불편, 이웃 관계, 생활 동선을 제대로 알기 전에 큰 돈을 쓰면 후회가 뒤따르기 쉽기 때문이다. 생활비와 초기 투자비를 충분히 확보한 뒤, 최소 몇 해의 시간을 두고 판단하는 편이 안전하다. 

 

집은 겉모습보다 관리의 효율이 중요하고, 농촌에서는 창고와 작업 공간의 비중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 소비를 위한 집이 아니라 생산과 보관, 이동과 관리가 가능한 생활 기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본채를 지나치게 크게 짓기보다 유지비를 줄이고, 손님이나 자녀 방문을 고려한 별도 공간을 분리해 두는 방식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됐다.

 

무엇보다 최 대표는 귀촌 갈등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고 진단했다. 도시에서 온 이들은 행정 주소를 옮겼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역민은 한 사람이 마을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다고 받아들인다. 이 인식 차이가 갈등의 출발점이 된다. 귀촌인이 바라보는 농촌이 한적한 쉼의 공간이라면, 지역민에게 농촌은 생업의 현장이자 오랜 생활 기반이다.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에 익숙한 도시적 감각은 공동체적 관심과 상호 개입이 자연스러운 농촌 문화와 충돌할 수 있다. 계획과 효율을 앞세우는 도시의 학습 방식도 자연의 순리와 경험의 축적을 중시하는 농촌의 감각과 어긋날 수 있다.

 

이런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마을의 외부인이 아니라 관계의 새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번지수만 찾아가는 이사는 쉽지만,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용기를 요구한다. 귀촌은 결국 지역사회 안에서 어떤 태도로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 선택이다.

 

최 대표가 제안한 정착의 원칙도 이 대목과 맞닿아 있다. 이웃의 삶을 지나치게 판단하지 말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천천히 만들며, 완벽보다 적정한 만족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진 것의 일부를 공동체와 나누고, 부정과 불만보다 수용과 협력을 앞세우는 자세는 농촌에서의 삶을 훨씬 단단하게 만든다. 귀촌의 성공은 화려한 시설이나 넓은 땅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어느 마을에 들어가 어떤 이웃으로 기억되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번 강의는 태안 백화노인복지관이 추진하는 태안둥지에 살어리랏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이 사업은 3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지며, 참여자들이 텃밭을 가꾸고 플리마켓을 기획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 안에서 실제 역할을 만들어 가도록 돕는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자신의 귀촌 경험을 활동책과 전자책 형태로 남기는 과정도 포함됐다. 삶의 흔적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다시 지역의 자산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체험형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귀촌은 자연 속으로 떠나는 낭만적 탈출이 아니다. 이미 형성된 공동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함께 살아갈 방식을 익히는 사회적 이동에 가깝다. 결국 성공적인 정착은 집의 위치가 아니라 사람의 방향에서 결정된다. 그 마을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보다, 내가 어떤 이웃이 될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 사람에게 농촌은 비로소 삶의 터전이 된다.

 

이번 특강은 귀촌을 공간 이동이 아닌 관계 전환의 문제로 다시 보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귀농과 귀촌의 차이, 은퇴 이후 단계별 삶의 설계, 농촌 공동체의 작동 방식, 성급한 건축과 토지 매입의 위험, 이웃과의 관계 형성 원칙까지 정착에 필요한 핵심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관점은 예비 귀촌인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지역사회와의 갈등을 예방하며, 보다 현실적인 정착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작성 2026.03.28 23:01 수정 2026.03.28 23:02

RSS피드 기사제공처 : 농업경영교육신문 / 등록기자: 정수호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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