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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us 특별 기획] "백남준 서거 20주기 — AI 시대, 그의 질문이 돌아왔다"

서거 20주기 국제학술심포지엄 《백남준 이후의 백남준》, 오늘 개막

비디오 아트에서 AI 인터페이스까지, 60년의 연결 고리

과거 복습이 아닌 현재의 논쟁 ,기술을 대하는 태도를 묻다


오늘(4월 23일) 오전 10시,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백남준 서거 20주기 국제학술심포지엄 《백남준 이후의 백남준》이 열린다. 국내외 연구자 9인이 모이는 이 자리는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가 아니다. 


"백남준을 완결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오늘의 기술 환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동시대적 연구의 장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주최 측의 명시적인 기획 의도다. AI가 일상 깊숙이 들어온 지금, 기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 백남준의 작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백남준 이후의 백남준》 공식 포스터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The Imaginary Pocus
'Paik After Paik'은 백남준의 국제 활동명 'Paik'을 반복한 타이틀로, 그를 현재와 미래의 열린 연구 대상으로 바라보겠다는 이번 심포지엄의 기획 의도를 담고 있다.

 

이미 제기된 질문, 아직 끝나지 않은 대화
1984년 1월 1일.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TV를 감시 도구로 묘사한 바로 그 해였다. 백남준은 같은 날, 위성 생중계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뉴욕, 파리, 서울을 실시간으로 연결했다. 화면 속에서 예술가들은 웃고, 연주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기술은 동일했다. 그것을 쓴 방식이 달랐다.

 

이 대비는 단순한 일화가 아니다. 백남준이 평생 천착한 핵심 문제의식이 여기에 압축돼 있다. 기술은 위협이기 이전에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달린 문제라는 것.

 

60년 된 질문이 오늘 다시 유효한 이유
이번 심포지엄은 백남준아트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공동 주최한다. 두 기관이 2025년 12월 체결한 업무협약의 첫 공동 학술사업이기도 하다. 국내외 연구자 9인이 참여하며, 전석 무료로 공개된다.

 

기조강연은 미국 일리노이대 한나 히긴스 교수가 맡는다. 발표 제목은 '피드백 포워드: 백남준과 그의 대학 — 실현되지 못한 프로젝트'다. '피드백 포워드'는 원래 시스템 이론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과거의 출력이 다시 미래의 입력에 영향을 미치는 순환 구조를 가리킨다. 

 

히긴스는 이 개념을 백남준이 구상했던 미완의 교육 프로젝트에 적용해, 오늘날 AI 시대의 학습과 지식 생산 조건과 연결해 재해석한다. AI가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는 지금, 이 주제는 단순한 역사 복원이 아니다.

 

AI 시대 인터페이스를 백남준에게 묻다
1부 발표 중 주목되는 것은 레프 마노비치(뉴욕시립대 특훈교수)의 세션이다. 제목은 'AI 시대를 위한 인터페이스: 백남준으로부터 배우기'. 마노비치는 AI 미학과 뉴미디어 연구 분야의 국제적 권위자로, 디지털 문화를 이론적으로 분석해 온 학자다.

 

그가 백남준의 작업에서 AI 시대 인터페이스(인간과 기계가 만나는 접점)의 설계 원리를 끌어낸다는 점은, 이번 심포지엄의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백남준이 AI를 예언했다'는 막연한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참조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자리다.

 

2부에서는 더글라스 바렛(시라큐스대 교수)이 '기계의 거부: 백남준의 로봇 정치학'을 발표한다. 백남준의 로봇 조각을 포스트휴먼(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의 인간 개념) 이론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발표 제목이 시사하는 것은, 기계를 숭배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그것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려 했던 백남준의 시각이 오늘날의 AI 담론과 맞닿아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읽힌다. 이 밖에도 2부에서는 백남준의 작업을 동물 인지, 아시아계 미국인 미디어 등 다양한 동시대 담론으로 확장하는 발표들이 이어진다.

 

작품보다 오래 남는 것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백남준이지만,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것은 특정 매체보다 기술을 대하는 일관된 태도였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TV에 자석을 갖다 댔고, 위성으로 대륙을 연결했고, 로봇에 브라운관을 박아 넣었다. 새 기술이 나올 때마다 분석보다 실험이 먼저였다.


백남준아트센터 박남희 관장은 이번 심포지엄에 대해 "백남준 연구의 축적된 성과를 돌아보고, 이를 동시대의 기술 환경과 지식 조건 속에서 다시 사유하는 자리"라며 "백남준을 하나의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구성하는 열린 연구 대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심포지엄의 제목 '백남준 이후의 백남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질문이다. 그 이후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기술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백남준이 TV 앞에서 던졌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페터 브뢰츠만, 백남준 옆 모습 사진: 흑백, 1963, 페터 브뢰츠만 컬렉션. 백남준아트센터 아카이브.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The Imaginary Pocus
1963년 백남준의 옆모습. 플럭서스 동료 페터 브뢰츠만의 컬렉션에서 보존돼 온 사진으로, 이번 심포지엄 공식 포스터에 사용된 원본 이미지다. (원본 이미지 해상도 보정) 

 

[알아두기 | 백남준은 누구인가]
백남준(白南準, 1932~2006)은 서울 출생의 예술가로, 비디오와 TV를 예술의 재료로 활용한 비디오 아트 분야의 선구자다. 도쿄대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한 뒤 일본과 독일로 건너가 음악과 전위 예술을 공부했다. 1960년대 독일에서 전위 예술 운동 '플럭서스(Fluxus)'에 참여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작업은 TV 수상기, 비디오카메라, 위성 중계, 로봇 조각 등 당대의 첨단 기술을 주된 재료로 삼았다. 1974년에는 미국 록펠러재단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지역 간 정보 격차를 해소하는 쌍방향 미디어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이후 인터넷과 디지털 네트워크의 발전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4년 위성 생중계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한 《손에 손잡고》 등 위성 예술 프로젝트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작업을 이어가다 2006년 1월 29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별세했다. 향년 73세. 현재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가 그의 유산을 보존·연구·전시하고 있다.

 

[행사 안내]
▪️행사명: 백남준 이후의 백남준 (Paik After Paik)
▪️일시: 2026년 4월 23일 (목)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서울 종로구 동숭동)
▪️주최: 백남준아트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입장료: 무료 (사전 예약 권장)
▪️문의: 백남준아트센터 njp.ggcf.kr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www.arko.or.kr

 

▪️세부 프로그램
10:00 — 축사 및 개회사
10:15 — 기조강연 | 한나 히긴스 (일리노이대 교수)
"피드백 포워드: 백남준과 그의 대학 — 실현되지 못한 프로젝트"


1부: 백남준 연구의 구조적 지형 (사회: 김윤서)
10:50 — 이숙경 (맨체스터대 휘트워스 미술관장)
"세계 재구성: 백남준에 대한 큐레토리얼 응답"
11:10 — 레프 마노비치 (뉴욕시립대 특훈교수)
"AI 시대를 위한 인터페이스: 백남준으로부터 배우기"
13:30 — 한나 페이셔스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
"아주 기본적인 가르침: SAAM 백남준 아카이브 컬렉션의 연구 지원"
13:50 — 손부경 (홍익대 융합예술센터 연구원)
"접속의 문제: 백남준아트센터의 학술 실천 성과와 과제"
14:10 — 1부 토론 (토론자: 임산 동덕여대 교수)

 

2부: 백남준 아젠다의 동시대적 확장성 (사회: 엄민영)
15:00 — 우정아 (포항공과대 교수)
"개념에서 플랫폼으로: 백남준 연구를 위한 아카이브의 토대"
15:20 — G. 더글라스 바렛 (시라큐스대 교수)
"기계의 거부: 백남준의 로봇 정치학"
16:00 — 이현애 (중앙대 학술연구교수)
"동물을 위한 비디오 환경?: 백남준의 TV 물고기와 종간 인지"
16:20 — 준 오카다 (에머슨칼리지 부교수)
"백남준이 아시아계 미국인 미디어에 미친 영향과 그 너머"
16:40 — 2부 토론 (토론자: 신원정 신라대 교수)

 

[전문 용어 사전]
▪️비디오 아트: 영상 매체를 주요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현대 미술 장르. 백남준이 1960년대 TV와 비디오테이프를 예술 재료로 활용하면서 국제적으로 확산됐다.


▪️피드백 포워드 (Feedback Forward): 시스템 이론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과거의 출력이 다시 미래의 입력에 영향을 미치는 순환 구조를 가리킨다. 이번 기조강연에서는 백남준의 과거 작업이 현재와 미래의 기술 환경에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지를 분석하는 틀로 사용된다.


▪️포스트휴먼 (Posthuman): 인간과 기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개념. AI와 로봇 기술의 발전과 함께 현대 예술·철학에서 중요한 담론으로 부상했다.


▪️인터페이스 (Interface): 인간과 기계, 또는 서로 다른 시스템이 만나 상호작용하는 접점. 스마트폰 화면이나 AI 챗봇의 대화창이 대표적인 인터페이스다.


▪️아카이브 (Archive): 예술가의 작품, 기록, 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수집·보존·관리하는 시스템 또는 그 결과물. 연구자들이 특정 예술가의 작업 과정과 사상을 연구하는 데 핵심 자료가 된다.
 

 

 

 

작성 2026.04.23 00:36 수정 2026.04.2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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