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예순 고개를 훌쩍 넘어 지난 세월을 돌이켜본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갈피마다에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던 고통의 순간들이 박혀 있고,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벽이 앞을 가로막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벽들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인생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명나라 철학자 왕수인(王守仁)은 일찍이 이 신비로운 삶의 이치를 〈범해(泛海)〉라는 시 구절 속에서 꿰뚫어 보았다.
“험난함과 평탄함은 본래 마음에 머무르지 않으니, 뜬구름이 허공을 스쳐 지나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險夷原不滯胸中, 何異浮雲過太空)
벽을 만드는 것도, 허무는 것도 결국 마음이다
우리는 삶의 험난함(險)은 기를 써서 피하려 하고, 평탄함(夷)은 어떻게든 붙잡아 곁에 두려 애쓴다. 하지만 왕수인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내 마음에 '체류하고 있느냐(滯)'의 문제라고. 고난이든 안락이든 마음이 그것을 붙잡아 두지 않으면, 그저 허공을 스쳐 가는 뜬구름일 뿐이다.
우리를 절망케 했던 그 '거대한 벽'도 실상은 마음이 붙들고 있던 강박의 그림자였을지 모른다. 니체 역시 정직함조차 외부의 규범이 아닌 '마음의 편안함'을 위한 선택이라 말했듯,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번뇌의 끝에는 결국 '나의 마음 상태'가 놓여 있다.
파도는 지나갈 뿐이고, 우리는 그것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불가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이 이치를 더욱 명확히 한다. 세상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사건을 붙잡아 괴로움이라는 실체를 빚어낸다. 삶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린다고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파도는 제 갈 길을 갈 뿐이고 우리가 그 파도를 놓지 못해 끌려다니는 것이다.
왕수인의 말대로 험난함과 평탄함은 본래 마음에 머무를 곳이 없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고 '집착'이라는 밧줄로 꽁꽁 묶어둘 때만, 그것이 우리 삶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과거를 탓하지 않고 미래를 쫓는 지혜
‘마음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다가오는 일을 막아서는 완력도, 세상을 내 입맛대로 바꾸는 권력도 아니다. 그저 구름을 붙잡지 않듯이, 험난함도 평탄함도 순리대로 스쳐 가게 두는 일이다.
다가오는 일을 막지 않고, 떠나는 일을 붙잡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은 가벼워진다. 일찍이 도연명이 노래했듯,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고(悟已往之不諫), 앞으로 바른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知來者之可追)”을 알기 때문이다.
지나온 세월이 가르쳐준 최고의 지혜는 단순하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이다. 죽을 것 같은 고통도, 눈앞의 거대한 벽도 결국은 뜬구름처럼 흩어진다. 구름을 보내주어야 그 뒤에 숨어 있던 본래의 넓고 푸른 하늘이 드러난다. 우리 마음은 본래 그 하늘처럼 넓고 깊은 것이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