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손에서 피어난 섬세한 붓놀림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달리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거대한 푸른 곰, ‘포춘베어’. 높이 23.57m의 이 초대형 조형물은 한국 공공미술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린 이정표다. 이 압도적인 존재를 탄생시킨 주역, 새시대아트 유영쾌 대표가 최근 국내 화단의 주목받는 추상화가로 변신해 활약하고 있다.
오랜 시간 육중한 철재와 씨름하며 ‘구조와 설계’의 세계에 머물던 그가, 이제는 찰나의 빛과 감정을 담아내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고 있다. 인생의 정오를 지나 비로소 자신만의 빛을 찾기 시작한 유영쾌 작가의 예술적 행보를 추적했다.
◆철(鐵)의 시대, 형태에 갇혀있던 영혼의 기록
유영쾌 작가의 인생 1막은 ‘단단함’ 그 자체였다. 1991년 새시대아트를 설립한 이후 그는 대한민국 조형물 제작 분야의 독보적인 장인이었다. 1995년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에 따라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가 의무화되던 시절, 그는 예술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추상적 아이디어를 수만 톤의 철재로 구현해내는 ‘현장의 마에스트로’였다.
그가 제작한 2,000여 개의 조형물은 전국 각지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포춘베어’는 그의 기술적 정점이었다. 폭 9.7m, 무게 40t에 달하는 이 거구는 단순한 조각을 넘어 고도의 공학적 설계와 예술적 감각이 결합된 결정체였다. 하지만 거대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으면서도 유 작가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창작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당시 국내에는 대형 설치 미술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이 드물었다. 원래 철제 공장을 운영했는데, 법이 바뀌며 조형물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해 지금까지 2,000개가 넘는 작품을 만들었다. 노하우가 쌓이며 분야의 전문가가 됐지만, 내 안에서는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그려내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이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조형물을 제작하며 체득한 공간감과 양감, 그리고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는 훗날 그가 캔버스라는 평면으로 옮겨왔을 때 남다른 ‘압도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이제 자녀들에게 경영의 짐을 나누고, 용접봉 대신 가느다란 붓을 들었다.
◆빛의 길, 색의 언어로 쓴 인생 2막의 일기
붓을 잡은 지 단 3년. 유영쾌 작가는 ‘유망주’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화려한 성과를 거두며 화단에 파란을 일으켰다. 2022년 한국미술국제대전에서 ‘기분 좋은 정오’로 서울시장상을 수상한 것은 그의 예술적 본능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유 작가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반전’에 있다. 거친 현장에서 육중한 철재와 씨름하며 보낸 이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캔버스는 화사하고 경쾌한 숨을 쉰다. 때로는 섬세하고 때로는 과감한 필치 덕분에 전시장에서 젊은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 오해받는 일화는 이제 유명한 에피소드가 됐다. 이는 그가 가진 미적 감각이 세대와 성별의 경계를 넘어 얼마나 유연하고 동시대적인지를 보여준다.
유영쾌 작가는 “조형물은 중력을 견뎌야 하는 이성의 영역이지만, 회화는 중력을 벗어나는 감성의 영역이다. 차가운 철을 다루던 손이 붓을 잡았을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한 자유를 느꼈다”며 캔버스 위에서 찾은 해방감을 고백한다.
◆오방색의 현대적 변주와 조각가적 본능
그의 작품 세계를 지탱하는 미학적 기둥은 한국 전통 오방색(황, 청, 백, 적, 흑)의 현대적 재해석에 있다. 전통 색상을 근간으로 하되 현대적인 보색 대비를 결합해, 시각적 자극을 넘어선 생동하는 에너지를 주입한다.
김월수 평론가가 “자극적이면서도 경쾌한 난색의 변화에서 오는 풍부한 감성”이라고 평했듯, 유 작가는 색채를 통해 감상자의 정취를 즉각적으로 깨운다. 특히 2023년 작 ‘기분 좋은 날’ 연작은 드라이브 중 마주한 햇살이나 안전벨트의 선형적 미학 같은 일상의 찰나를 ‘생의 환희’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또한 흐드러지게 핀 ‘벚꽃’ 연작은 꽃잎 하나의 형태에 매몰되지 않고, 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거대한 ‘에너지의 덩어리’를 포착한다. 이는 대형 조각을 만들 때 전체의 볼륨과 공간의 흐름을 먼저 고려하던 베테랑 조각가로서의 본능이 회화적 언어로 완벽히 치환된 결과다.
◆정화(淨化)의 예술, 누군가의 마음을 닦아내는 빛
유영쾌 작가가 캔버스 앞에 서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의 그림이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선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는 자신의 예술 철학을 ‘정화’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내 작품이 어떤 장소에 걸려 있을 때, 누군가의 마음을 정화하고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평소 성격도 찡그리는 일이 별로 없는데, 그런 긍정적인 면이 작품에 반영된 것 같다. 세상이 아무리 철처럼 차갑고 단단해도, 그 안에 빛을 투과시키면 언제든 찬란한 색채로 변할 수 있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무지개, 다이아몬드, 피라미드 같은 기하학적 형상은 모두 ‘완결된 행복’과 ‘영원한 빛’을 상징한다. 30년간 조형물을 세우며 도시의 이정표를 만들었듯, 이제 그는 마음의 이정표를 그려내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가장 찬란한 정오
유영쾌 작가는 첫 번째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수의 아트페어에서 컬렉터들과 만나고 있다. 그의 성공은 ‘인생 2막’을 꿈꾸는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성공한 늦깎이 작가’로만 평가하기엔 부족하다.
그는 철제 조형물이라는 공공예술의 영역에서 익힌 ‘대중과의 호흡’을 회화라는 순수예술의 영역으로 성공적으로 이식한 사례다. ‘포춘베어’가 영종대교에서 여행객들을 배웅하듯, 그의 그림들은 이제 일상의 공간과 전시장 곳곳에서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계속 그림을 그리려 한다. 내 안의 소년이 보고 있는 그 찬란한 빛이 다할 때까지 말이다”
철의 이성으로 빚어낸 서정의 세계. 유영쾌 작가의 캔버스는 이제 막 가장 찬란한 정오의 빛을 통과하고 있다. 30년간 조형물 제작 현장을 지켜온 마에스트로의 엄격한 이성이 자유로운 색채와 만난 이 지점이야말로, 한국 현대 미술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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