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אָדָם (아담) - 사람, 아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사람이라는 단어는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살다'라는 어간에 '-ㅁ'이라는 접미사가 결합되어 생긴 단어라고 한다. 더불어 '삶'이나 '사랑' 역시 모두 '살다'에서 비롯된 어근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은 '살아 있음' 혹은 '삶' 그 자체가 정체성이기도 하다.
외형적으로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과학의 발전에 의해 외형만으로는 로봇과 인간을 구분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적절한 외형에 움직임이 비슷하다고 해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있을까? 호흡은 어떤가? 아니, 기능은 차치하고, 생물학적으로 동일하다고 해서 '살다'의 의미를 가진 '사람'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사람'은 단지 스스로의 살아 있음만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자신만의 살아 있음은 언제고 소멸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살아 있음을 전달해야 하며, 살아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아돌프 히틀러나 유영철, 폴 포트 같은 이들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그들은 사람일 수가 없다. 자신의 살아 있음과 더불어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에게 '사람'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현실은 무척 안타깝다. 모두가 자신의 살아 있음만을 추구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자유와 방종의 구분조차 귀찮아하는 시대이다. 아무리 못된 짓을 저질러도 내 아이를 건들면 게거품을 물고 짖어댄다. 많은 이들에게 애완동물은 '자식'이 되어버렸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랑스러운 '자식'을 유기하기도 한다.
온 세상을 위임받아 다스리며, 모두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자신의 살아 있음만큼이나 세상의 살아 있음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서 이야기하듯 자신의 정체성이 바로 자신의 존재 증명인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뜨거운 가슴으로 자신과 세상을 살아 숨쉬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