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교과서의 지위 변경과 교실 운영 방식의 재조정
AI 디지털교과서를 둘러싼 최근의 변화는 단순한 기술 도입 논의를 넘어, 학교 교육에서 무엇을 중심에 둘 것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국회와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인공지능 기반 학습 소프트웨어의 법적 지위와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손질해 왔고, 그 결과 AI 디지털교과서는 교실의 표준 교재라기보다 학교와 교사가 필요에 따라 선택해 활용하는 교육자료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띠게 됐다.
이 변화의 핵심은 기술 활용 자체의 철회가 아니라, 기술의 위치를 다시 정리하는 데 있다. 교실 안에서 인공지능을 어디까지 활용할 것인지, 또 어떤 지위로 둘 것인지에 대해 국가가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이번 제도 조정의 본질에 가깝다.

초중등교육법 개정과 법적 지위의 변경
전환의 분기점은 법 개정이었다. 2024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용 도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2025년 8월 재의결을 거치며 이 같은 방향은 최종 확정됐다.
이후 제도 정비도 뒤따랐다. 교육부는 2025년 11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교과서 검정 체계에서 제외했다.
이는 인공지능 기반 소프트웨어를 기존 교과서와 같은 법적 틀 안에 두기보다, 학교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자료 체계로 재배치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교육부 로드맵 조정과 적용 교과의 재설계
정책 변화는 법적 지위 조정에 그치지 않았다. 교육부는 2024년 11월 발표에서 2025년에는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영어·수학·정보 교과를 중심으로 우선 적용하겠다고 밝혔고, 국어와 기술·가정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사회와 과학은 2027년으로 1년 늦췄다.
이 조정은 AI 활용 자체를 중단했다기보다, 적용 교과와 활용 범위를 다시 설계한 조치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즉, 인공지능 기반 학습 도구를 모든 교과에 일괄적으로 확산하는 대신, 교과의 특성과 학교 현장의 준비 수준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쪽으로 정책의 무게가 이동한 것이다.
전국 선도학교 운영과 단계적 검토의 의미
이 과정에서 주목할 대목은 전국 단위 일괄 확산보다 선도학교 중심의 단계 운영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보도에서는 전국 1,900개 안팎의 디지털 활용 선도학교 운영이 언급되지만, 이 수치를 곧바로 전국 차원의 효과 검증 완료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재 확인되는 사실은 교육 당국이 선도학교와 시범 운영을 통해 현장 적합성을 점검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AI가 수업 전체를 대신하는 절대적 교재로 자리 잡았다기보다, 교실 상황과 학습 목표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용되는 도구로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정책 설명 자료에서 강조되는 기능도 이런 방향과 맞닿아 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생의 수준과 속도에 맞춘 콘텐츠 제공, 학습 패턴 분석, 개별 학습 보조 등의 기능을 중심으로 설명돼 왔으며, 교사의 수업을 대체하는 단일 기준서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기술의 효용은 전면적 대체보다 제한적이고 실용적인 보조 기능에서 먼저 검토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무리가 없다.
기술 안정성 논란과 학교 현장의 수용성 문제
정책 조정의 배경을 설명할 때는 표현을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는 기술 안정성, 학교별 준비 격차, 교과별 특성, 법적 지위 논란 등이 함께 제기돼 왔지만, 이를 단일한 실패의 증거로 단정하는 것은 확인된 사실의 범위를 넘어선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교육 당국은 현장의 수용성과 준비 수준을 반영해 적용 교과와 제도적 위치를 다시 조정했고, 그 결과 AI 디지털교과서는 의무적 성격이 강한 교과서보다 자율 활용이 가능한 교육자료 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기술을 전면에 세우기보다, 교실 안에서 감당 가능한 방식으로 배치하려는 조정의 성격을 띤다.
산업계 반응과 교육격차 우려가 남긴 과제
정책의 궤도가 바뀌면서 산업계와 학교 현장에도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AI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잃고 교육자료 체계로 재분류되면서 관련 업계의 반발과 법적 대응 움직임이 보도된 바 있다.
다만 여기서도 확인된 사실과 전망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교육격차 우려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지만, 그 정도와 양상은 학교의 예산, 인프라, 운영 의지, 교사의 활용 역량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격차 확대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화 이후 학교별 활용 차이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차분히 점검하는 일이다.
교실의 본질을 지키면서 기술의 효용을 검증하는 일
현재의 정책 조정은 새로운 기술을 교실에서 배제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기술의 역할을 다시 제한하고 정리하는 과정에 가깝다. 인공지능 기반 학습 도구는 학생의 학습을 일부 지원하는 기능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교육의 중심을 대체하는 절대적 기준서로 자리 잡기에는 제도와 현장 모두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접속 환경과 정보 보안, 학교 간 활용 여건, 교사의 수업 설계 지원, 그리고 실제 학습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일이 그 핵심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도입의 속도가 아니라, 어떤 도구를 어떤 지위로 교실 안에 둘 것인지 분명히 정하는 일이다. 이번 조정은 그 질문에 대해 국가가 내놓은 첫 번째 제도적 답변으로 읽힌다.
[전문 용어 사전]
▪️AI 디지털교과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학생의 개별 학습 패턴을 분석하고 수준과 속도에 맞춘 콘텐츠를 제공하는 맞춤형 학습 지원 소프트웨어.
▪️교육자료: 국가가 의무 채택을 강제하는 교과용 도서와 달리, 학교장이나 교사가 수업 목적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해 활용할 수 있는 시청각 및 보조 자료.
▪️초중등교육법: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교육 제도와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지침과 기준을 명시한 국가 법률.
▪️에듀테크: 교육과 기술의 합성어로,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고 교육 효과를 높이는 산업 및 서비스 분야.
▪️선도학교: 새로운 교육 정책이나 기법을 전국 단위로 시행하기 전에 앞서 도입하여 시범 운영하고 현장 적합성을 검증하는 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