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0문
Q. How is the word to be read and heard, that it may become effectual to salvation? A. That the word may become effectual to salvation, we must attend thereunto with diligence, preparation, and prayer; receive it with faith and love, lay it up in our hearts, and practice it in our lives.
문.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읽고 들려져야 구원을 얻게 하는 효력이 있겠습니까? 답.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을 얻게 하는 효력이 있게 하려면, 마땅히 부지런함과 예비함과 기도함으로써 그 말씀에 주목하며, 믿음과 사랑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여 우리 마음에 갈무리하고 우리 생활에 실천하여야 합니다.
-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 8:34)
-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
-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10)
-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우리는 유례없는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클릭 한 번으로 고전의 정수부터 최신 논문까지 손에 넣을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빈곤하다. 지식은 넘쳐나는데 삶을 변화시키는 동력은 상실된 상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실존적 결핍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0문은 이러한 시대적 갈증에 대해 매우 정교하고도 실천적인 답을 제시한다. 성경이라는 텍스트가 어떻게 단순한 활자를 넘어 한 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효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다. 여기서 '효력'(에네르게이아)이라는 단어는 잠재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에너지가 실제적인 운동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소요리문답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러한 운동성을 갖기 위해 세 가지 전제 조건인 부지런함(Diligence), 예비함(Preparation), 기도(Prayer)를 강조한다.
먼저 '부지런함'은 단순히 성실하게 읽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주목'하는 행위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듣는다는 것, 즉 '쉐마(שְׁמַע)'는 곧 순종을 전제로 한 경청을 의미했다. 잠언 기자는 지혜의 문 곁에서 날마다 기다리는 자를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잠 8:34). 이는 오늘날 스낵 컬처(Snack Culture)처럼 정보를 가볍게 소비하는 태도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텍스트의 이면을 파고들고, 행간에 숨겨진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려는 능동적인 태도가 부지런함의 본질이다.
'예비함'과 '기도'는 심리적 상태와 영적 태도를 정렬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확증 편향'에 빠지기 쉽다. 예비함은 이러한 편향을 내려놓고 마음의 토양을 고르는 작업이다. 사도 베드로가 악독과 기만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한 마음을 가지라고 권면한 것은(벧전 2:1-2), 바로 이 수용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 기도가 더해질 때, 우리의 눈은 비로소 율법의 놀라운 비밀을 보게 된다(시 119:18). 기도는 유한한 인간의 이성이 무한한 신의 계시와 접속되는 영적 안테나를 세우는 일이다.
본격적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소요리문답은 '믿음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필터를 제시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이 유익하지 못한 이유를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에서 찾는다(히 4:2). 믿음은 지적 동의를 넘어 그 말씀이 참되다고 믿고 자신의 삶 전체를 맡기는 결단이다. 즉, 믿음은 그냥 “맞아, 그 말이 옳아” 하고 인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진실을 신뢰해서 자기 존재와 삶을 걸어버리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에 사랑이 더해져야 한다. 라틴어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의 전통에서 사랑은 말씀이 내 영혼의 일부가 되게 하는 접착제와 같다. 진리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지식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처럼 차갑고 공격적인 도구로 변질되기 쉽다.
소요리문답은 '마음에 갈무리'하고 '생활에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지식의 자산화 과정과 유사하다. 유동적인 정보가 내면의 확고한 가치 체계로 고착화될 때, 그것은 비로소 인격의 일부가 된다. 시편 기자가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 범죄하지 않으려 했던 노력은(시 119:11) 말씀을 일종의 '영적 면역 체계'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완성은 '실천'이다. 야고보서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실행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단언한다(약 1:25).
신앙이란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철저한 태도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법의 주문이 아니다. 그것은 농부가 씨를 뿌리듯 부지런히 마음의 밭을 갈고, 기도로 물을 주며, 믿음과 사랑으로 인내할 때 비로소 맺어지는 생명의 열매다(눅 8:15). 우리가 이 원리를 따라 말씀을 대할 때, 성경은 더 이상 고대 유대인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 나의 삶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살아있는 효력, 즉 '에네르게이아'(ἐνέργεια, 실제 작동하는 능력)로 역사할 것이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