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풍기
作/ 바다 전상빈
봄기운이 등을 보이며 계절은 어느새 여름 쪽으로 기울고, 창문 틈 햇살에도 더위의 입김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세 철을 벽 한편에 기대어 잠들어 있던 선풍기를 꺼낸다.
날개마다 켜켜이 내려앉은 먼지는 지난 계절의 피곤과 한숨까지 함께 품고 있다.
분무기에 따뜻한 물을 담고 주방세제를 적당히 풀어 식초 한두 스푼을 섞는다.
살아오며 몸에 익은 생활의 요령 하나.
먼지 묻은 날개 앞뒤로 빠짐없이 고루 뿌려 주고, 커다란 비닐을 씌운 채 강한 바람으로 오 분, 길게는 칠 분쯤 돌려 준다.
윙― 윙―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묵은 먼지들이 비닐 안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마치 오래 품고 살던 근심이 한꺼번에 바닥으로 쏟아지는 것 같다.
깨끗해진 바람이 방 안을 한 바퀴 돌 무렵, 문득 내 기억도 함께 돌아본다.
잊지 않은 이름들, 아직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얼굴들, 세월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은 사람들.
다행이다. 기억은 아직 멀쩡하다. 괜스레 안도의 웃음도 따라 나온다.
선풍기 바람이 초여름 밤을 밀어가고,
나는 오늘도 내 기억 속 사람들 모두가 아무 일 없이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