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고마자와대학교 교수 일행이 여순사건의 역사와 진실을 직접 살피기 위해 여수를 찾았다.
방문단은 정한수 목사(여수열린교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지난 28일 여수·순천 10·19사건 여수유족회 사무실에서 유족들과 좌담을 갖고 사건의 역사적 배경과 피해 경험을 들었다.
통역을 맡은 정장연 고마자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제주4·3과 5·18민주화운동은 일본에서도 관련 책이 출간돼 비교적 알려져 있지만 여순사건은 그렇지 않다며, 사건의 역사와 진실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여수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좌담에는 아네하 교수와 남편, 정장연 교수와 그의 아내를 비롯해 정한수 목사, 서상균 여순사건 문화해설사, 박금만 화백 여순사건 유족 3세, 서장수 여수·순천 10·19사건 여수유족회장, 남의식 옹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여순사건이 개인과 가족에게 남긴 피해가 유족들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전해졌다.
남의식 옹은 여순사건 발발 뒤 자신의 집안이 대지주였다는 이유로 봉기에 가담한 일부 주민들에게 부친과 큰형이 구타당해 숨졌고, 자신은 친척 집으로 피신해 목숨을 건졌다고 증언했다.
서장수 회장은 1948년 당시 마을 구장이었던 부친이 진압군에 의해 ‘봉기군 부역자’로 몰려 국민보도연맹에 강제 가입됐으며,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집단 학살됐다고 설명했다.

서 회장은 아버지를 잃은 채 태어난 자신의 삶과 어머니가 겪은 고난, 유족이라는 이유로 감내해야 했던 사회적 편견도 전했다.
그는 “어머니가 여순사건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한 채 자녀들에게 사회생활을 하다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참고 살아가라고 누누이 당부했다”고 말했다.
학업에 매진해 항공장교학교에 합격했지만 연좌제로 귀가 조치됐고, 이후에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학업과 직장 생활을 이어가 교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설명했다.
일본 방문단은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과 여순사건을 연결해 살폈다.
정장연 교수는 아네하 교수의 부친도 반전 활동을 하다 체포돼 구금 생활을 했다고 소개했다.
아네하 교수의 부친 아네하 산로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사회주의 연구모임을 이끌다 1944년 12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조선인 2명 등과 함께 체포돼 도쿄 헌병대 부대 지하 유치장에 구금됐다. 전후에는 파시즘과 노동운동을 연구하고 평화·민주화운동에도 참여했다.
아네하 교수는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인물들에게 일제가 영향을 끼쳤다고 알고 있다며 일본의 책임 문제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참석자들은 여순사건을 제주4·3과 대구 10월항쟁, 5·18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다른 국가폭력 사건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나눴다.

일제강점기의 유산과 해방 이후 친일세력 청산의 미완성 문제도 거론됐으며, 대구 10월과 제주4·3, 여순사건을 지역별 사건으로만 나누기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진실규명 과정에서 피해자의 경험과 목소리를 충분히 기록해야 한다는 점에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유족들은 역사적 사실 확인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이 실제 겪은 피해와 가족의 파괴까지 함께 기록해야 조사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좌담을 마친 뒤 참석자들은 여순사건 역사전시관과 제14연대 주둔지, 인구부 전투 현장, 형제묘 등을 찾아 관련 장소와 역사를 살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