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표가 끝나자 패배를 받아들이는 연설 대신 '도둑맞은 선거'라는 구호가 먼저 터져 나왔다. 10월 27일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진영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집권 리쿠드당이 아랍계 정당과 카타르의 개입을 주장하며 선거 결과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흔들고 나섰다.
숫자가 바꾼 판
크네세트 120석 가운데 정부 구성에는 61석이 필요하다. 개표 결과 네타냐후 블록은 53석, 가디 아이젠코트 전 참모총장이 이끄는 야권 블록은 48석에 머물렀다. 열쇠는 아랍계 정당이 쥐었다. 이들은 합계 19석을 얻어 역대 최고 수준의 성적을 냈다. 어느 진영도 이들을 빼고는 과반을 그릴 수 없는 구도다.
증거 없는 '카타르 배후설'
리쿠드는 29일 성명에서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했다. 외국 자금이 아랍 유권자에게 흘러들었고, 하마스 후원국으로 지목돼 온 카타르가 배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거는 내놓지 않았다. 카타르 외무부는 터무니없고 위험한 주장이라며 즉각 부인했다.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아랍 정당 지도자들을 구금하라고까지 요구했다.
갈라진 이스라엘 정치권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인 노암 솔베르그 대법관은 외국 개입에 관한 심각한 의혹이 접수됐다며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에 조사를 맡기고 1주일 안에 결과를 받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선관위는 선거가 체계적으로 훼손됐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아이젠코트는 리쿠드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해 결과를 흔든다고 비판했다. 아랍 정당 연합인 합동리스트는 네타냐후가 아랍 유권자의 표를 지우려 한다고 반발했고, 라암당의 만수르 아바스 대표는 조사를 환영하면서도 자당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를 주문하되 아랍 공동체 전체에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의석보다 무거운 신뢰
결과 인증 시한은 11월 4일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네타냐후는 총리직을 유지한다. 연정 협상이 끝내 무산되면 내년 초 재선거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번 사태가 던지는 질문은 의석 계산을 넘어선다. 패배한 쪽이 유권자 한 집단을 통째로 의심의 대상으로 몰 때, 민주주의가 버틸 수 있는 신뢰의 한계가 시험대에 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