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 고기 무조건 피할 필요 없어…과도한 고온 조리 줄이고 삶기·찌기 병행
고령층은 단백질 섭취도 중요…당독소 줄이려다 영양 부족 초래해선 안 돼
노릇하게 구운 고기와 바삭한 튀김은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고온에서 음식을 조리할 때 생성되는 이른바 '당독소'가 노화를 촉진하고 만성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관심을 끌고 있다.
당독소는 주로 최종당화산물(Advanced Glycation End Products·AGEs)을 가리키는 대중적인 표현이다.
당과 단백질 등이 반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화합물을 통칭하며, 음식 조리 과정뿐 아니라 사람의 몸속에서도 생성된다.
일반적으로 고기를 높은 온도에서 굽거나 튀길 때는 물에 삶거나 찌는 조리법보다 일부 최종당화산물이 더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
최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같은 식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조리법에 따라 혈액 속 최종당화산물 수치가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구운 고기를 먹으면 곧바로 노화가 빨라진다거나, 특정 조리법만 바꾸면 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음식 속 최종당화산물의 생성과 체내 변화에 관한 연구 결과를 실제 질병 발생이나 수명에 미치는 영향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연구는 조리법이 일부 대사 지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노화 속도나 수명에 미치는 장기적인 효과까지 입증한 것은 아니다.

당독소란 무엇인가…음식뿐 아니라 몸속에서도 만들어져
최종당화산물은 당이 단백질이나 지방 등의 구성 성분과 비효소적으로 반응하면서 형성되는 다양한 화합물이다.
음식을 가열할 때 갈색으로 변하면서 특유의 향과 풍미가 생기는 마이야르 반응과 관련이 있다. 고기를 굽거나 빵을 구울 때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다만 갈색으로 변한 음식에 모두 같은 종류와 양의 최종당화산물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식재료의 성분과 수분 함량, 조리 온도와 시간 등에 따라 생성되는 물질이 달라질 수 있다.
최종당화산물은 음식에서만 유래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몸속에서도 당과 단백질 등의 반응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특히 혈당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체내 당화반응과 관련된 변화가 증가할 수 있다. 최종당화산물이 당뇨병과 혈관 건강, 노화 관련 연구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최종당화산물은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여러 화합물의 집합이다. 종류에 따라 생성 경로와 체내 작용이 다르므로 모든 최종당화산물을 동일한 독성 물질로 취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음식에서 섭취한 최종당화산물과 몸속에서 생성된 최종당화산물도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같은 고기도 굽기와 삶기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
최종당화산물의 생성에는 조리 온도와 수분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굽기와 튀기기처럼 높은 온도에서 수분이 적은 상태로 가열하는 조리법은 삶기나 찌기처럼 물을 이용하는 조리법보다 일부 최종당화산물을 많이 생성할 수 있다.
같은 고기라도 팬에서 높은 온도로 오래 굽는 경우와 물에 넣어 삶는 경우에는 식품 표면의 온도와 수분 조건이 달라진다. 이러한 차이가 최종당화산물 생성량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조리법에 따른 차이가 모든 식품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식재료의 단백질과 지방 함량, 조리 시간과 온도, 수분 함량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또한 음식 속 최종당화산물 함량이 높다고 해서 그 양이 그대로 혈액 속에 축적되는 것은 아니다. 음식으로 섭취한 물질이 소화·흡수되고 체내에서 처리되는 과정까지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음식에서 최종당화산물이 많이 생성된다는 사실과 해당 음식을 먹었을 때 사람의 건강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2025년 임상시험, 조리법만 바꿔도 혈중 수치 달라져
2025년 국제학술지 Cell Reports Medicine에는 조리법에 따른 최종당화산물의 영향을 비교한 무작위 교차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진은 건강한 성인 20명을 대상으로 같은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조리법을 달리한 식단을 비교했다.
참가자들은 삶기·찌기 등 최종당화산물 생성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조리법과 굽기·오븐 조리 등 생성량이 많은 조리법으로 구성된 식단을 각각 2주 동안 섭취했다.
연구 결과, 최종당화산물 생성량이 적은 조리법으로 만든 식단을 섭취했을 때 혈액 속 일부 최종당화산물 수치가 낮게 나타났다. 콜레스테롤 등 혈중 지질 지표에서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변화가 관찰됐다.
연구진은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조리법에 따라 혈액 속 최종당화산물과 일부 대사 지표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연구 대상이 20명으로 적고,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각 식단을 2주씩 비교한 단기 연구라는 한계가 있다. 연구에서 측정한 여러 염증·대사 관련 지표 가운데 조리법에 따른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은 항목도 있었다.
특히 이 연구는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의 실제 발생률, 노화 속도, 수명 변화를 평가한 연구가 아니다.
따라서 삶거나 찐 음식을 먹으면 노화가 늦춰지거나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에 미치는 영향, 어디까지 확인됐나
최종당화산물은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염증 및 노화 관련 연구에서 오랫동안 다뤄져 왔다.
일부 최종당화산물은 체내 단백질의 성질을 변화시키거나 특정 수용체와 상호작용해 염증과 산화스트레스 관련 반응에 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용이 확인됐다고 해서 음식으로 섭취하는 최종당화산물이 사람에게 동일한 정도의 건강 위험을 일으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제학술지 Advances in Nutrition에 2021년 게재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은 무작위 임상시험 13편을 종합해 최종당화산물 섭취량이 다른 식단의 영향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최종당화산물 함량이 낮은 식단을 섭취한 집단에서는 함량이 높은 식단을 섭취한 집단보다 인슐린 저항성, 공복 인슐린, 총콜레스테롤, LDL 콜레스테롤 등 일부 지표가 개선됐다.
반면 대사증후군과 관련된 다른 지표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2024년 온라인으로 공개된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는 병렬설계 연구 13편과 무작위 교차연구 4편을 종합했다. 최종당화산물 함량이 높은 식단은 공복혈당과 공복 인슐린, 인슐린 저항성 지표의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식단 속 최종당화산물 함량이 혈당 조절과 대사 건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슐린 저항성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개선됐다는 결과와 실제 당뇨병·심혈관질환 발생이 줄었다는 결과는 다르다.
현재까지 확인된 연구만으로 특정 조리법이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을 예방한다고 확정하거나, 노화를 몇 년 늦춘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고온에서 구운 고기, 당독소 외에도 살펴볼 물질 있어
고기를 높은 온도에서 굽거나 직화로 조리할 때는 최종당화산물 외에도 다른 화합물이 생성될 수 있다.
대표적인 물질이 헤테로고리 아민(HCAs)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다.
헤테로고리 아민은 고기와 생선 등을 높은 온도에서 조리할 때 아미노산과 당, 근육에 존재하는 성분 등이 반응하면서 만들어질 수 있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는 고기의 지방이나 육즙이 불에 떨어져 발생한 연기가 고기 표면에 닿는 과정 등에서 생성될 수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에 따르면 이들 물질은 실험실 연구에서 유전물질을 손상시킬 수 있는 성질이 확인됐으며, 동물실험에서는 암 발생과 관련된 결과가 보고됐다.
다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조리된 고기를 통해 섭취한 이들 물질과 암 발생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
일부 역학연구에서는 고온에서 오래 익힌 고기의 섭취와 특정 암의 위험 증가 사이에 연관성이 관찰됐지만, 다른 연구에서는 일관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최종당화산물과 헤테로고리 아민,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를 모두 같은 물질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생성 과정과 건강 영향에 관한 연구 근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고온 조리에 따른 잠재적 위험을 줄이려면 고기를 지나치게 오래 굽거나 검게 태우는 조리 방식을 피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고령자는 고기 섭취 줄이기보다 조리법 조절해야
최종당화산물에 관한 연구 결과를 이유로 고기를 완전히 끊거나 단백질 식품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
특히 고령자는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과 근력이 감소하기 쉬워 충분한 영양과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
구운 고기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육류와 생선, 달걀, 콩류 등 주요 단백질 공급원을 지나치게 줄이면 오히려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할 수 있다.
보다 현실적인 방법은 식재료의 영양을 유지하면서 조리법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매번 높은 온도에서 굽기보다는 수육이나 국, 찜 등 물을 이용하는 조리법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 생선도 굽기뿐 아니라 찜이나 조림 등으로 조리할 수 있다.
팬에서 고기를 구울 때는 지나치게 높은 온도로 오래 가열하거나 표면을 검게 태우는 일을 피하는 것이 좋다. 직화구이를 할 때는 불꽃과 연기에 직접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고 탄 부분은 제거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다만 최종당화산물을 줄이겠다는 이유로 고기나 생선을 덜 익혀 먹어서는 안 된다. 식중독 예방을 위한 충분한 가열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조림이나 찜으로 조리하더라도 설탕과 소금이 많이 들어간 양념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조리법뿐 아니라 음식 전체의 영양 구성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뇨병이나 만성콩팥병 등으로 식사 조절이 필요한 환자는 개인의 건강 상태와 치료 목표에 따라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
'당독소 줄이면 노화 예방'…현재 근거로는 단정 어려워
최종당화산물은 노화와 만성질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고온 조리에서 일부 최종당화산물이 더 많이 생성될 수 있고, 조리법을 달리하면 사람의 혈액 속 최종당화산물과 일부 대사 지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근거도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음식으로 섭취한 최종당화산물이 사람의 노화를 직접 앞당기는 정도나, 섭취량을 줄였을 때 실제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는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또한 음식 속 최종당화산물의 종류와 함량은 식재료와 조리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특정 음식이 무조건 해롭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노화와 만성질환은 혈당과 혈압, 신체활동, 흡연, 수면, 식생활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특정 물질 하나를 줄이는 것만으로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은 신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고령자의 식생활에서는 충분한 단백질과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면서 지나친 고온 조리를 줄이고, 음식을 안전하게 조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운 고기를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삶기와 찌기 등 여러 조리법을 활용하고, 특정 음식이나 조리 방식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현재 과학적 근거에 부합하는 접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