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אֶל(엘) - ~로, ~를 향하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저는 '포항'이라는 지역 출신입니다. 산간벽지는 아니지만 아주 큰 도시도 아닙니다. 포항은 경상북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시와 시골이 잘 어우러져 있는 곳입니다. 예전엔 그나마 포항제철이 있어서 타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지역 경제도 무척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의 이목과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쁘지 않은 외모에 통기타 가수, 락밴드 보컬 활동도 하다보니 꽤나 인기도 있었습니다. 하룻밤에 너댓개의 번개모임 참석하는게 거의 일상이었습니다. 돈은 없었지만, 참 화려한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돈이 별로 필요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화려하게 잘 살고 있으면 되는데, 어느 때부턴가 '포항'이라는 곳이 너무 좁게 느껴졌습니다. 매일같이 술 사주겠다, 밥 사주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도 항상 갑갑했습니다. 어떤 날은 정말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서울을 몇 번 다녀온 것이 화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20대에 150만원을 들고 직업전문학교를 가겠다고 상경하지만, 상경한 그날 돈을 다 잃어버립니다. 근근히 몇 달은 버텼습니다. 그러나 몇 년을 못 버티고 다시 포항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포항에서 다시 예전처럼 삶이 화려해지기 시작합니다. 매일같이 여러번의 번개모임이 열렸고, 저는 회비 같은 건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원래, 항상 프리패스였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2003년에 큰 교통사고로 척추 하나가 박살나서 허리에 티타늄 재질의 기둥 두 개, 길이 6cm짜리 나사못 6개를 박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쫓겨가듯 서울의 작은 어느 음악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사실 제가 원했던 것은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더 넓은 곳에서의 더 화려한 삶이었습니다. 척추가 부러지고 가는게 아니라 척추가 부러지도록 신나하며 더 넓은 곳으로 가길 원했습니다.
어쨌든 서울이라는 더 넓은 곳으로 왔지만, 제 마음 속의 갑갑함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갑갑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서울에서 산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었습니다. 뉴욕을 간다고 해도 해소가 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갑갑함은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무렵부터 사그러들었습니다. 포항이라는 곳이 너무 좁아 서울까지 왔지만, 얼마 되지도 않아서 서울도 좁아서 갑갑하다고 느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제가 향해야 하는 그 땅이 '지역(area)'이 아니라 '위치(status)'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떠냐구요? 지금은 어떻게든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이사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공부하고 책 쓰면서 살아가려고 말이지요. 인생사 참 재밌죠.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