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이 졸업 후 마주할 일터는 냉혹한데, 정작 교실에선 노동의 권리를 가르칠 제도적 뒷받침이 전혀 없습니다. 관련 법령이 없다 보니 시수 확보도 어렵고, 교재나 강사 지원도 교육청이나 지자체 조례의 유무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수도권 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한 정규직 교사의 토로다. 이러한 현장의 고백은 통계로도 명백히 드러난다. 최근 교사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무려 60.1%가 “지난 1년 동안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단 한 번도 실시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공교육의 울타리가 사실상 멈춰 서 있는 셈이다.
19~21대 전원 폐기 이어 22대 국회 5개 법안 병합 계류... 또다시 ‘장기 표류’ 위기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노동인권(노동교육) 관련 법안은 19대부터 21대 국회까지 6건이 발의됐으나 단 한 건도 통과되지 못하고 ‘전부 폐기’되는 비운을 겪었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한정애, 강득구, 박홍배, 이용우, 박해철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5건의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병합 계류되어 있다. 지난 2026년 3월 환노위 입법공청회를 거치며 실질 심사의 단계에 진입했으나, 여전히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이들 5개 법안은 명칭과 세부 강제성, 소관 부처(노동부냐 교육부냐)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지만, ▲국가의 책무 규정 ▲기본계획 수립 ▲실태조사 실시 ▲전문기관 지정 및 지원이라는 공통분모를 명확히 담고 있다. 특히 이용우 의원안의 경우 초·중·고교생뿐 아니라 노무제공자, 프리랜서 등 급변하는 일터의 취약계층까지 아우르는 생애주기별 교육과 5년 주기 실태조사 공개, 강사 인증 체계의 법적 토대 구축을 명시해 현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왜 제정되지 못했나... 입법 발목 잡는 ‘반복된 세 개의 걸림돌’
현장과 학계에서는 법률 제정이 번번이 좌절되는 배경으로 크게 세 가지 구조적 쟁점을 꼽는다.
1. 교육과정 반영의 벽 (국가교육위원회 권한과의 충돌): 법안에 '교육과정 반영 의무화'를 넣을 경우, 국가교육위원회의 독립적 권한과 상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국교위는 "현행 교육과정으로도 지금도 충분하다"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교육부 등 관계부처는 이를 '반드시 반영'에서 '반영 노력'으로 완화하자는 수정 의견을 내놓고 있다.
2. 기존 체계와의 중복 논란: 이미 한국고용노동교육원 등이 노동교육을 수행하고 있어 별도의 제정법이 실익이 있느냐는 회의론이다. 그러나 현장 강사들에게 이 법은 단순한 '일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과 열정에만 의존하던 구조를 넘어 공적 전문인력으로 인정받는 '지위'의 문제이자 체계적 강사 인증의 법적 토대라는 점에서 제정이 불가피하다.
3. 중립성 논란과 소관 부처 갈등: 경영계는 “노조 편향적 교육이 될 수 있다”며 노사 균형과 경영권 교육 병행을 요구하고, 소관 부처를 노동부로 둘 것인지 교육부로 둘 것인지를 두고 부처 간 이견이 팽팽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환노위 전문위원 검토의견에서도 명시되었듯, 노동인권교육은 헌법과 국제노동기준(ILO)에 근거한 보편적 교육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편향된 교육이 결코 아니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과 기본권을 배우는 일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원안 취지 살려 연내 통과시켜야”... 노동·인권단체 59곳의 준엄한 촉구
지난 2026년 10월 26일, 전국 59개 노동·인권단체는 국회를 향해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의 연내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현재 입법 추진 경로는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 앞에 놓여 있다.
- 시나리오 A (원안 취지 연내 제정): 전문기관 및 강사 인증 준비에 즉시 착수하여 법적 안전망을 가장 빠르고 온전하게 가동하는 방안.
- 시나리오 B (의무 완화 후 제정): 학교 반영 의무를 일부 완화하더라도 사회·사업장 교육을 중심으로 법적 실효성을 먼저 확보하는 방안.
- 시나리오 C (장기 계류 및 교육원법 개정 우회): 또다시 정쟁에 밀려 법안이 표류하고 고용노동교육원법 개정 예산 증액 수준으로 미봉책을 쓰는 방안.
국회가 시나리오 C를 선택해 또다시 침묵한다면, 그 피해는 일터로 나서는 수백만 명의 청소년과 청년,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교육계 전문가는 “체계적인 통계도 없고, 교사의 60%가 교육을 진행하지 못하는 지금의 방치 상태는 국가의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22대 국회는 더 이상 정쟁과 부처 이기주의 뒤에 숨지 말고, 여야 합의를 통해 노동인권교육법을 연내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