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깥의 전쟁은 종종 안의 전쟁을 비추는 거울이다.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이 차려질수록, 정작 이란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더 깊게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려 하고, 또 누군가는 그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은밀히 바란다. '협상'이라는 단어 하나가 어떻게 한 나라의 정파들을 두 쪽으로 갈라놓는가. 테헤란의 한 노학자가 그 속살을 조심스레 펼쳐 보였다. 전쟁의 운명이 협상장이 아니라 테헤란의 권력 다툼 속에서 판가름 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란 정치의 지형은 본래 개혁파와 보수파, 온건파가 권력을 나눠 쥐는 구조다. 그런데 이 균형 위로 두 개의 거대한 변수가 동시에 떨어졌다. 하나는 미국과의 협상이고, 다른 하나는 최고지도자의 교체다. 지난 2월 28일,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약 열흘 뒤인 3월 8일, 전문가 회의는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3대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 외부 분석가들은 모즈타바가 부친보다 한층 강경한 인물이며, 초강경 파이다리 진영의 사상적 뿌리와 가까운 노선이라고 평한다. 권력의 정점이 통째로 바뀌는 격변기에, 협상이라는 화두가 정파들의 오랜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은 것이다.
아나돌루 통신사와 마주한 학자 골람알리 라자이는 대통령을 지낸 라프산자니를 가까이서 보좌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번 균열의 진앙으로 '파이다리 전선'을 지목한다. 라자이의 분석에 따르면 파이다리는 후자티예 협회와 보수파가 결합한 흐름으로, 한때 아흐마디 네자드를 앞세워 대통령직을 두 차례 거머쥐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거리가 벌어졌다. 이들은 협상을 '하람'으로 선언하는 강경 노선을, 광장의 구호와 일부 매체의 논조에까지 투영해 왔다.
라자이는 파이다리가 새 지도자 선출에도 개입하려 했다고 본다. 이들이 점찍어 둔 후보는 쿰의 성직자 모하마드 메흐디 미르 바케리였으나,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선택되며 그 시도는 무산됐다는 것이다. 의회에서도 상당한 의석을 차지했을 뿐 압도적 다수는 되지 못했고, 대선에서는 사이드 잘릴리를 내세워 페제시키안 대통령을 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두 싸움에서 모두 패한 셈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손을 놓지 않고 나라를 급진의 벼랑으로 끌고 가려 하며, 전쟁의 불길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는 진단한다.
라자이의 말에는 한 노정객의 회한과 기대가 동시에 묻어났다. 그는 개혁파에는 협상을 금기시하는 강경한 핏줄이 없으며, 모든 전쟁은 결국 협상으로 끝나게 마련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라프산자니 역시 독일이나 카타르 같은 나라를 거치지 않는 직접 대면 협상을 신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파키스탄과 튀르키예, 중국 같은 나라의 중재가 실효를 거둘 수 있었다고 평가했고, 이 전쟁이 트럼프가 바라는 두세 달짜리 휴지기가 아니라 영원히 끝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비판의 화살은 국영방송으로도 향했다. 그는 국영방송이 신뢰를 잃었으며, 출연자들이 몇 시간씩 전쟁의 지속을 부추기는 여론을 빚어낸다고 꼬집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조차 그 편성을 비판할 정도다.
다만 라자이는 페제시키안이 전시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평했다. 정부가 전쟁 가능성을 미리 내다보고 식량 창고를 채워 두었으며, 튀르키예와 이라크 등 육로를 통한 운송·교역의 숨통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협상을 낙관하면서도 한 가지 경고를 빠뜨리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휴전에도 아랑곳없이 암살과 도발을 이어갈 것이므로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에 견해차가 벌어질 것이며, 미국이 적어도 석 달은 행동을 멈추고 페르시아만에 평온이 돌아오면 원유 수출이 재개되고 동결된 자금도 분할로 돌아올 거라고 전망했다.
한 나라가 바깥의 적과 협상을 벌이는 동안, 그 안에서는 더 은밀하고 끈질긴 또 하나의 전쟁이 치러진다.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손이 있다는 라자이의 진단은, 모든 분쟁의 그늘에 그 분쟁으로 이득을 보는 누군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오래된 진실을 새삼 일깨운다. 평화는 협상장의 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펜을 쥔 손을 안에서 붙드는 자들과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에서, 누구의 손이 먼저 풀리느냐에 한 민족의 내일이 달려 있다. 결국 묻게 된다. 전쟁의 불을 끄려는 자와 그 불로 몸을 데우려는 자가 한 지붕 아래 살 때, 그 집의 운명은 끝내 누구의 손이 결정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