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진 시장, 끊긴 식수, 그리고 잃어버린 최고지도자. 이란이 짊어진 짐은 한 나라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워 보인다. 그러나 그 폐허의 한복판에서 이란의 지도부는 고개를 숙이는 대신 턱을 치켜들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해 "항복은 너희 꿈에서나 보라"고 쏘아붙인 것이다. 폭탄 앞에서 무릎 꿇기를 거부하는 이 결연한 목소리는 과연 자신감의 표현인가, 아니면 벼랑 끝에 선 자의 마지막 자존심인가.
이 외침은 결코 진공 속에서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처참한 현실이 깔려 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아파치 헬기 추락을 빌미로 인근 지역을 거듭 강타했고, 남부의 식수 저수조마저 무너뜨렸다. 봉쇄와 제재로 시장은 주저앉았고, 지난 2월 28일에는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 빈자리는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이어받았다. 나라 전체가 '전쟁도 평화도 아닌' 어정쩡한 늪에 빠진 형국이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바로 이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전쟁이 결코 나라에 이롭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그것이 곧 굴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못 박았다.
페제시키안의 어조는 단호했다. 만약 적들이 이란의 존엄을 짓밟거나 영토와 주권을 침범하려 한다면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또 다른 책략을 겨냥했다. 아랍과 무슬림 국가들을 이란에 맞서도록 부추기는 정책이 역내에서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지역 국가들이 워싱턴과 텔아비브의 노선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그 흐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그는 평가했다. 한층 강경한 목소리는 이란 의회 국가안보위원장 이브라힘 아지지에게서 나왔다. 그는 미국이 이 무대에서 패배했음을, 스스로 패자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미국이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시오니스트 정권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아지지는 이란의 국가 안보와 '저항의 축'의 이익에 반하는 어떤 행동에도, 미국이 두고두고 잊지 못할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발언이 나온 무대는 6월 10일 테헤란의 바흐다트홀이었다. '아민 이란'이라는 이름의 행사로, 순교한 지도자를 기리는 자리였다. 추모의 공간에서 페제시키안은 굴복의 불가능성을 역설했다. 그는 비행기와 폭격만으로는 결코 한 나라를 항복시킬 수 없다며, 그토록 작은 가자조차 무릎 꿇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 단호함 속에 감춰진 또 다른 진실이다. 페제시키안은 고(故) 알리 하메네이가 생전에 협상과 대화의 지속을 허용했었다고 공개했다. 칼날 같은 강경 수사 뒤에, 대화의 문은 여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신호를 흘린 셈이다. 그는 적들이 이란 내부의 단합을 흔들려 한다며 국민적 결속을 거듭 호소했다. 폐허와 자존심, 분노와 협상 가능성이 한 연설 안에서 묘하게 뒤엉켜 있었다.
때로 가장 큰 목소리는 가장 깊은 상처에서 터져 나온다. 끊긴 수도꼭지와 주저앉은 시장, 빈자리가 된 지도자의 자리 위에서 외치는 "항복은 없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한 나라가 처한 절박함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강한 말은 종종 갑옷이 되어 주지만, 갑옷은 끝내 갈증과 굶주림을 막아 주지 못한다. 결연한 수사와 무너진 일상 사이의 그 아득한 거리를, 정작 메워야 할 사람은 광장의 연설자가 아니라 마른 수도꼭지 앞에 선 보통의 시민들이다. 그리하여 묻게 된다. 자존심으로 폭탄을 막을 수는 없을 때, 한 민족을 끝내 지켜 내는 것은 결연한 구호인가, 아니면 그 구호 너머의 차가운 빵 한 조각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