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의 한 좁은 바닷길에서 시작된 불길이, 지구 반대편 가정의 장바구니와 주유소 계기판까지 그을리고 있다. 세계은행이 2026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에너지 가격을 밀어 올리고, 그 불씨가 물가와 금리를 타고 번지면서다. 멀리서 벌어지는 전쟁이 어떻게 내 월급의 무게까지 가볍게 만드는가. 숫자 뒤에 숨은 그 연결의 사슬을 들여다본다.
사슬의 첫 고리는 전쟁이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한 2월 28일 이후, 중동의 화약고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결정타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다. 세계 원유와 가스의 동맥이 막히자, 에너지 공급망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세계은행은 올해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평균 94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36%나 높은 수준이다. 기름값이 뛰면 물건값이 따라 오른다. 봉쇄 하나가 올해 세계 물가 상승률을 지난해의 3.3%에서 4%로 밀어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물가가 오르면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죈다. 차입 비용이 무거워지고, 투자와 소비가 움츠러든다. 전쟁이 성장의 목을 조르는 경로는 이토록 촘촘하다.
이 경고를 내놓은 주체는 워싱턴에 본부를 둔 세계은행이다. 6월 11일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 2.9%에서 2.5%로 낮췄다. 0.4% 포인트를 깎아 낸 이 수치는 팬데믹 이후 가장 부진한 성적표다. 더 어두운 그림자는 그 아래에 있다. 만약 에너지 공급 차질이 더 심해진다면 성장률은 1.3%까지 곤두박질치고 물가는 4.4%로 치솟을 수 있다고 보고서는 경고한다. 유가가 115달러 선까지 오르는 중간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률이 2.1%로 주저앉는다. 세계은행은 1월 이후 전 세계 3분의 2에 이르는 나라의 성장 전망을 끌어내렸다. 2027년에는 2.8%로 다소 회복되겠지만, 그조차 2010년대 평균에는 못 미친다.
전쟁의 고통은 결코 공평하게 나뉘지 않는다. 정작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하향을 면했다. 세계은행은 미국 성장률을 1월과 같은 2.2%로 유지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인 데다 감세와 인공지능 투자 붐이 떠받친 덕이다. 다만 평범한 미국인은 갤런당 4.5달러를 넘긴 기름값에 여전히 신음한다. 중국은 5%에서 4.2%로 내려앉고, 인도는 6.6%로 대형 경제권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을 이어 간다.
가장 깊은 멍이 드는 쪽은 개발도상국이다. 세계은행은 이들에게 2020년대가 '잃어버린 10년'이 될 것이라 했다. 중국과 인도를 빼면, 지난 10년간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의 1인당 소득 격차는 거의 좁혀지지 않았다. 비료 가격까지 큰 폭으로 오르면서 식량 물가로 옮아 붙는 점도 무섭다. 세계은행 총재 아제이 방가는 사람을 지키고 안정을 보존하되 내일의 성장과 일자리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은행은 타격이 큰 개도국에 즉시 600억 달러를, 사태가 길어지면 1천억 달러까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지표는 차갑지만, 그 숫자가 닿는 곳은 늘 따뜻한 사람의 삶이다. 0.4%포인트라는 건조한 수치 뒤에는, 오른 기름값에 트럭 시동 켜기를 망설이는 운전사가 있고, 비싸진 비료 앞에서 한숨짓는 농부가 있으며, 장바구니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부모가 있다.
한 좁은 해협의 빗장이 지구 전체의 살림을 옥죈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촘촘히 연결된 한 식구인지를 새삼 일깨운다. 전쟁의 청구서는 전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끝내 가장 약한 자의 식탁 위에 가장 무겁게 내려앉는다. 멀리서 울린 포성의 메아리가 우리 모두의 지갑을 흔드는 지금, 평화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