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고용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할 고용보험기금의 재정건전성에 심각한 비상등이 켜졌다. 구직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실업급여 지출이 통제 불능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기금의 실질 적립금이 수조 원대 적자로 돌아섰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와 겨우 구멍을 메우는 구조적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2025회계연도 고용보험기금 결산보고서'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지난해 집행된 고용보험 사업비 총액은 20조 9,405억 원에 달했다. 이는 직전 연도의 18조 6,456억 원과 비교해 무려 12.3%인 2조 2,949억 원이 급증한 규모다. 연간 사업비 지출이 20조 원의 벽을 넘어선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고용 대란이 극에 달했던 2021년(21조 577억 원) 이후 정확히 4년 만이다. 지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17조~18조 원 안팎을 유지하며 다소 안정세를 보이는 듯했던 재정 지출이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이 같은 지출 폭등의 주된 원인은 실업급여 지급액이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실업급여 지급 총액은 17조 4,833억 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 내수 경기 침체로 인해 제조 및 건설 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데다, 최저임금 상승과 연동된 실업급여 하한액 조정한도 재정 부담을 키웠다. 여기에 실업급여 계정에서 함께 지출되는 모성보호 관련 급여의 이용률이 가파르게 상승한 점도 재정 고갈을 부채질한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수입보다 지출이 비대해지면서 장부상 적립금의 착시효과를 걷어낸 실질 재정 상태는 이미 파산 수준에 가깝다. 지난해 말 기준 실업급여 계정의 표면적인 적립금은 1조 7,275억 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일시적으로 빌려온 예수금이 포함된 착시일 뿐이다. 이 빌린 돈을 제외한 실질 적립금은 무려 5조 9,933억 원의 손실을 기록 중이다. 결국 빚을 내어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고착화됐다.
현행 고용보험법은 예상치 못한 대량 실업 사태나 고용 악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연간 지출액의 최소 1.5배에서 2배에 달하는 금액을 여유자금(적립 배율)으로 비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실업급여 계정의 적립 배율은 기준치에 처참하게 미치지 못하는 0.1배에 머물렀다. 2024년 기록했던 0.2배에서 절반으로 토막 난 수치다. 사실상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이를 흡수할 체력이 완전히 방전된 상태다.
기금 전체의 재정수지 역시 적자의 늪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기금 총수입은 20조 3,485억 원에 그친 반면 지출이 이를 압도하면서 5,920억 원의 당기 재정 적자가 발생했다. 전체 연말 장부상 적립금은 7조 8,003억 원으로 집계되었으나, 이 역시 공자기금 차입금을 차감하면 실제 남은 알짜 자산은 796억 원에 불과하다. 앞서 감사원이 고용보험기금 운용 실태 감사를 통해 "전국적인 고용 위기가 도래할 경우 국가 차원의 대응력이 현저히 떨어져 기금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한 내용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발표된 고용 지표는 이러한 우려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취업자 수가 감소하면 기금의 주된 수입원인 고용보험료 수입은 줄어드는 반면, 실업급여 신청자는 늘어 재정 악화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5세 이상 총 취업자 수는 2,912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만 명 감소했다. 이는 고용 시장이 견고함을 잃고 17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음을 의미하는 위험 신호다.
고용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현재 재정건전성 회복과 기금 구조 개편을 위해 전석 전담팀(TF)을 가동하고 제도 전반에 대한 뼈를 깎는 개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구체적인 조율이 마무리되는 대로 고용보험 실효성을 높일 종합 대책을 수립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보험기금은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는 최후의 사회적 안전망이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는 빚으로 빚을 갚는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취업자 감소라는 고용 한파 속에서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부정수급 근절, 실업급여 하한액 제도 개편, 모성보호 재정의 일반회계 이관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단행되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