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디지털 문맹에서 디지털 개척자로
“컴퓨터는 우리 세대가 만질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AI로 그림도 그리고, 손주와 영상통화도 하니까요. 이제는 저도 AI로 사람들 앞에 발표할 수 있게 됐어요.”
올해 74세인 김말순 씨는 서울 마포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매주 AI 교육을 받고 있다. 한때 스마트폰 사용도 버겁던 그가 이제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바꾸는 프로그램을 다루고, 간단한 파이썬 명령어를 입력하며 일상을 바꾸고 있다.
‘나이 들면 새로운 걸 배우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은퇴는 더 이상 끝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점이다. 디지털 세상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니어들이 AI를 배우며 다시 한번 사회 속 주체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함께 운영하는 시니어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은 단순한 ‘컴퓨터 교실’이 아니다. 이제는 AI라는 고도 기술이 그 중심에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을 가장 활발하게 흡수하는 세대 중 하나가 바로 ‘노년’이다.
2. 시니어 교육, 왜 AI가 필요한가
고령화는 전 세계가 안고 있는 과제다. 특히 한국은 OECD 국가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다. 2025년이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현실에서 시니어 세대의 디지털 격차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취약성을 동반한 복합 문제로 번지고 있다.
AI 교육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단순히 ‘디지털 적응’의 수준을 넘어, ‘사회 참여’와 ‘삶의 질’ 향상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서울시가 2023년부터 시행한 'AI 시니어 학교' 사업의 조사에 따르면, 수료생 중 62%가 “AI 교육을 통해 삶의 의욕이 생겼다”고 응답했다. 54%는 “새로운 직업을 고려해보았다”고 말한다.
교육 내용도 실용적이다. 챗봇 만들기, 이미지 생성 도구 다루기, 음성 명령 활용,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 편집하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니어의 눈높이에 맞춰 설계된다. 교육은 단순히 기술 전수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감을 되찾고, 커뮤니티 활동으로 이어져 사회적 관계도 확장된다.
3.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실천하는 시니어들
76세에 AI 챗봇을 만든 이정호 씨는 유튜브에서 1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크리에이터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영상으로 만들어 또 다른 시니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있다. “젊었을 땐 일하느라 배우지 못했지만, 이제 시간이 많으니 더 잘 배우고 집중할 수 있어요.”
충북 청주의 ‘실버AI 교실’에서는 68세 박현자 씨가 동료 시니어들과 함께 AI 시 낭송 앱을 만들고 있다. 그녀는 “이 나이에 코딩을 배운다는 게 꿈같지만, 자식 세대와 대화할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코딩”이라는 단어 하나만 들어도 두려움을 느끼던 시니어들이, 첫 수업 후 “재미있다”는 말부터 꺼낸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자기효능감’이라는 커다란 심리적 자산이 되어 삶에 스며든다.
교육을 통해 시니어들은 단순히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해력(digital literacy)을 갖춘 시민으로 거듭난다. 그들은 자신이 다시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그리고 여전히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4. 노년의 삶을 바꾸는 기술과 교육의 만남
AI 교육은 시니어 개인의 삶을 넘어서서 사회 전체의 복지와 지속가능성에도 영향을 준다. 60대 이상 고령자의 고독사, 경제적 위기, 건강 악화 등은 대부분 ‘사회적 단절’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AI 교육을 통해 디지털 소통에 익숙해진 시니어들은 온라인 모임, 자원봉사, 비대면 일자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다시 참여한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에도 긍정적인 신호다. 시니어 고용률이 높아지고, 디지털 헬스케어나 비대면 행정서비스 이용률도 개선된다.
서울시 디지털 배움터는 2024년 기준 65세 이상 수료생 2만 명을 돌파했으며, 그중 약 3,800명은 AI 기술을 활용한 1인 창업에 도전했다. 이는 단순한 교육을 넘어, '경제적 자립'이라는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지역 사회에서는 시니어들이 멘토가 되어 다른 고령자들의 AI 학습을 돕는 '역멘토링' 구조가 생겨나고 있다. 이를 통해 고립된 노인이 ‘지식 공유자’로 다시 태어나며, 세대 간 간극 또한 줄어든다.
생각을 자극하는 결론: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AI는 젊은 사람들만의 기술이 아니에요.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거죠.”
이 말은 어느 80세 시니어 수강생이 수료식에서 남긴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이 증명하듯, 오늘날 시니어는 더 이상 ‘배움의 수혜자’가 아니라, '디지털 시민'으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100세 시대,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의미 있는 노후'의 기준도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단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넘어서, '능동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노년의 목표다.
AI는 그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도구를 손에 쥔 지금, 당신의 삶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