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라.”
‘만천과해(瞞天過海)’는 그저 오래된 병법의 한 문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고전 전략은 오늘날 기업 경영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놀라운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당나라 장군 장사귀는 태종이 바다를 두려워하자, 배 위에 흙을 깔고 육지처럼 꾸며 황제를 속이고 바다를 건너게 했다.
눈앞의 현실을 위장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이 전략은 현대 경영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대기업보다 열악한 자원을 가진 중소기업들일수록,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감추고 위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본, 유럽, 한국의 세 기업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전략을 실천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일본의 작은 거인 ‘산요공업’
도쿄 외곽, 낡고 작디작은 공장 하나가 있다. 외부만 보면 오래된 창고 같지만, 이곳은 세계 유수의 반도체 장비 제조사에 고정 부품을 공급하는 ‘산요공업’의 본사다. 이 회사는 철저히 외형을 단순하게 유지하면서 경쟁사들의 시선을 피했다.
기자들이 공장을 방문하면 응접실만 공개하고 핵심 제조라인은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한다. 기술력은 논문이나 특허 대신, 구전과 구두계약으로 보호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자사의 핵심 기술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대기업들이 기술 인력과 설계를 빼갈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산요공업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최고의 부품을 납품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라고 밝혔다. 이는 만천과해의 본질, 즉 너무 눈에 띄지 않게 철저히 위장하고 성공하는 방식의 현대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유럽 스타트업 ‘리튬코어’
스위스 제네바의 한 골목에 위치한 평범한 장난감 가게. 하지만 이곳 지하에는 배터리 혁신의 핵심 기술을 실험 중인 스타트업 ‘리튬코어’가 자리 잡고 있다. 리튬코어는 초소형 드론 배터리를 개발하며, 경쟁사보다 40% 더 오래 작동하는 성능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부러 기술 스타트업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거대한 배터리 제조사들의 주목을 피하고 조용히 기술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연구개발 인력은 장난감 디자이너로 위장했고, 회의실은 마치 어린이 놀이방처럼 꾸며졌다. 이 ‘일상적 위장’은 대기업의 스카우트와 인수합병 시도에서 회사를 보호했다.
리튬코어는 기술이 완성된 후에야 투자 유치를 본격화했고, 이미 기술 특허를 확보한 상태였다. 만천과해, 즉 ‘익숙함 속에 숨겨진 전략’이 세계 무대 진출의 초석이 된 셈이다.
단어 하나로 시장의 인식을 바꾸다
국내 한 B2B 기업 ‘G기업은’은 바이오센서 부품을 제조하면서도 늘 “대기업에 밀리는 2차 하청업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제품의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브랜드 인식이 약해 고객사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들은 전략을 바꾸었다.
기술 향상이 아니라, 제품명을 바꾸는 위장 전략을 펼쳤다. ‘GE-702B’라는 기계적 코드명을 ‘젠스캔(ZenScan)’이라는 고급 브랜드명으로 변경했고, 패키징도 고급스러운 블랙 톤으로 일신했다.
단지 겉모습을 바꿨을 뿐인데 주문량이 두 배로 증가했고, 거래처도 중견기업 중심에서 대기업으로 확대되었다. 실제로 제품은 이전과 같았지만, 소비자의 심리는 철저히 위장된 브랜드와 외형에 흔들린 셈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만천과해의 교훈이 국내 중소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 사례다.
전략은 검은색이 아니다, 회색이다
‘만천과해’는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 불균형한 경쟁 구도에서 약자가 생존하기 위한 지혜다. 기업 경영에서 핵심 기술을 감추거나, 전략을 위장하거나, 심지어 겉포장을 바꾸는 일은 비윤리적이기보다 전략적 판단의 영역에 더 가깝다. 다만 그 위장 속에 진실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포장해도 본질이 없으면 결국 들통나기 마련이다.
현대 비즈니스는 매일같이 ‘위장과 발견’의 싸움이다. 고전 병법이 지금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짜 교훈은, “현실을 인정하되, 그 안에서 가장 지혜롭게 숨고, 가장 영리하게 나아가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