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아직 말을 안 하지?”
이 질문을 24개월 아동을 둔 부모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음이 단순한 말 더딤인지, 아니면 자폐 스펙트럼의 징후인지 판단하는 건 쉽지 않다. 많은 부모들이 “조금 더 크면 괜찮아질 거야”라며 넘어간다. 그러나 이 ‘조금 더’라는 시간 동안 결정적인 중재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는 언어, 사회성, 행동의 세 영역에서 발달 지연이 두드러지는 신경 발달 장애다. 중요한 점은 대부분 생후 18개월 전후부터 그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이가 눈을 잘 마주치지 않거나,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고, 반복적인 행동을 자주 한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기분에 따라’, ‘성격이 좀 내성적이라서’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ASD의 초기 신호는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부모가 간과하기 쉬운 비언어적 요소에서 나타난다. 눈맞춤, 미소, 옹알이, 지시 따르기, 놀이 방식 등 다양한 상호작용의 질에서 이미 차이가 보인다. 부모가 이 미세한 이상 신호를 읽지 못한다면 진단이 늦어지고, 그만큼 중재도 늦어진다. 무엇보다 아이가 사회적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 영향은 성인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는 말 대신 '신호'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신호를 외면하거나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기지 않는 용기. 그것이 조기 진단의 시작이다.
왜 조기 진단인가: 생애 초기 개입이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
‘신경가소성’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뇌가 환경과 자극에 따라 구조적, 기능적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뇌가 가장 활발히 성장하는 시기는 출생 직후부터 만 3세 사이. 이 시기를 ‘황금기’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게 이 시기는 두 배로 중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조기 진단을 받은 아동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언어 능력, 인지 발달, 사회성 영역에서 의미 있는 개선을 보인다. 특히 만 2세 이전에 중재를 시작한 아동은 만 5세 이후 정규 교육 과정에 더 원활하게 적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발달 지연 회복이 아니라, 평생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 개입이다. 그렇다면 왜 조기 진단율은 여전히 낮을까? 문제는 진단 과정의 복잡성과 부모의 인식 부족이다. 일반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진단은 소아정신과나 발달클리닉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병원에 가기까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부모의 심리적 저항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사실상, 조기 진단은 부모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 부모가 아이의 첫 번째 이상 징후를 가장 먼저 관찰하게 된다. 늦지 않게, 놓치지 않게. 이것이 생애 초기 뇌 발달과 회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다.
부모의 직감과 책임: 전문가보다 빠른 최초의 관찰자
아이가 처음으로 눈을 맞췄던 순간,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던 날, 처음으로 손을 흔들었던 기억. 이 모든 장면에는 부모가 있었다. 그렇다면 아이가 사회적 반응을 멈추거나,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부모가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
부모의 직감은 결코 과학보다 느리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연구에서 자폐 조기 진단을 받은 아이들의 대부분이 “엄마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는 데서 출발했다. 중요한 건 그 직감이 행동으로 이어지느냐는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전문가들도 확정 진단을 꺼린다. “지켜보자”는 말이 흔하다. 하지만 단순 관찰에만 머문다면, 6개월~1년이라는 소중한 개입 시간을 잃게 된다. 최근에는 발달검진 결과와 부모 체크리스트, 영상 기반 AI 분석 도구 등을 통해 더 정밀하고 빠른 초기 선별이 가능해졌다. 부모는 ‘의심받는 사람’이 아니라 ‘개입을 촉진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직감을 무시하지 말고, 주변의 안일한 반응에 주눅 들지 말아야 한다. 한 걸음 빠르게 움직인 부모가 아이의 인생을 바꾼다.
조기 중재의 힘: 훈육이 아닌 개입이 필요한 이유
“말 안 듣는다고 혼내면 더 말을 안 해요.”
이 말은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 흔히 들리는 고백이다. ASD 아동은 감각 민감성, 사회적 해석력 부족 등으로 훈육이라는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이해이고, 중재다. 조기 중재는 아이에게 ‘적응의 기술’을 가르친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연습시키고, 언어 발화를 유도하며, 일상생활에 필요한 루틴을 훈련시킨다. 이 과정은 단순히 교육이 아니라 아이의 삶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대표적인 조기 중재 프로그램으로는 ABA(응용행동분석), DIR/Floortime, ESDM(덴버 모델) 등이 있다. 특히 ESDM은 생후 12개월부터 개입이 가능하며, 놀이를 기반으로 한 상호작용을 통해 아동의 주도성을 살리고, 자발적 소통 능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개입은 가정에서도 가능하며, 부모의 역할이 핵심이다. 중요한 건 중재의 ‘시기’다. 조기 개입은 단지 빠른 시작이 아니라, 뇌 발달의 가장 효과적인 시점을 놓치지 않는 전략이다. 지금 시작하면 된다.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가장 빠를 수도 있다.
아이의 미래는 언제 결정되는가?
자폐 스펙트럼 진단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하지만 이 시작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는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조기 진단과 중재는 생애 전반에 걸친 사회적 자립성과 심리적 안정, 학습 능력, 대인관계 형성 등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는 감정적으로 두렵고, 주변은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괜찮아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기회는 흘러간다.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그 짧은 순간들 안에 평생이 담겨 있다. 그 짧은 신호를 읽는 순간, 당신은 이미 전문가가 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