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적 없다는 건 시도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클라우디아 골딘은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과정에서의 단절을 "이야기되지 않은 실패"라 표현했다. 실패는 언제나 존재했지만, 말해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공유되지도 않았다. 오늘날의 사회는 실패에 대한 기록을 삭제하려고 한다. 이력서엔 ‘공백기’가 아닌 ‘재정비 기간’이라 적고, 사업 실패는 ‘피봇’이라 표현된다. 그만큼 실패는 부끄러운 과거, 감춰야 할 오점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사람들은 실패의 무게를 정면으로 감내했던 이들이다. 일론 머스크, 오프라 윈프리, 월트 디즈니. 모두 경력에서 중대한 실패를 겪은 인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실패를 회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패를 고통스러운 교훈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겼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그런 실패의 경험을 '비정상적'이라 생각한다는 점이다. 실패하지 않는 커리어, 순탄한 이직과 승진의 사다리는 실상 허상이다.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실패에서 뭔가를 배운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실패를 감추는 데 혈안이 되었을까? 실패를 자산으로 바꾸는 관점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실패는 왜 ‘경력 단절’로만 소비되는가
한국 사회에서 실패는 종종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무책임의 결과로 낙인찍힌다. 특히 커리어 실패는 “낙오”로 간주된다. 한 번의 퇴사, 한 번의 창업 실패, 승진 누락은 그 사람의 전체 가치를 결정짓는 지표처럼 작동한다. 문제는 이러한 시선이 너무도 일반화돼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시장의 변화나 조직의 구조조정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한 실패조차도 개인의 무능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경력 단절’이라는 말 자체가 암시하듯, 실패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비정상적인 “단절”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많은 경우 실패는 커리어 여정의 필연적인 일부이며,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되는 전조일 수도 있다. 미국 경영대학원(MBA)에서는 오히려 실패 경험이 있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한다. 왜냐하면 실패를 통해 자신에 대한 이해, 시장에 대한 통찰, 리스크 관리 능력을 갖추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시선이다. 한 번의 낙오도 허용하지 않는 학벌 중심주의, 스펙 경쟁, 경력 단절에 대한 극단적 공포가 '실패 무용론'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개인의 커리어 설계에서 실패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든다.
실패를 통과한 사람들의 목소리
스타트업 창업자 김성훈은 두 번의 폐업을 겪은 뒤, 세 번째 회사에서 성공적인 인수합병을 이끌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앞선 실패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전략적 판단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말했다. 또 다른 예로, 유명 마케터 박유진은 대기업에서의 좌천 경험을 “브랜딩을 새롭게 배우는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실패는 이들에게 자산이었다. 경험과 통찰, 그리고 재기 능력은 결코 책에서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지혜였다.
실패를 연구하는 조직행동학자인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실패는 잘만 관리하면 혁신의 자양분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실패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단순실패, 복잡실패, 지능실패. 이 중 지능실패는 시도 끝에 얻은 교훈이자, 오히려 조직의 성장에 기여하는 요소로 본다. 즉, 실패 그 자체보다 실패의 ‘이해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HR 전문가들은 실패 이후 이직하거나 전직한 사람들의 성과가 종종 더 높다고 지적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실패는 자아를 돌아보고, 진로 방향을 수정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커리어를 리디자인하게 만드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자산으로 만드는 전략 3가지
기록하라
실패의 경험을 피하지 말고 ‘경험 자산’으로 남겨야 한다. 어떤 선택이 실패로 이어졌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면 커리어 포트폴리오의 중요한 재료가 된다. 특히 이력서에서 단순히 ‘기간’만 채우는 대신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를 명시하는 것이 미래 인터뷰에서 차별점을 만든다.
리프레이밍하라
실패를 ‘좌절’이 아닌 ‘실험’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예컨대 “제품 런칭 실패”는 “시장의 니즈를 새롭게 파악한 계기”로, “조직과의 불화로 인한 퇴사”는 “내 가치관에 맞는 조직문화를 찾는 과정”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실패가 아닌 과정의 일부로 바라볼 때 성장의 토대가 된다.
공유하라
실패를 감추지 말고 말해야 한다. 커리어 세미나, 블로그,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실패를 진솔하게 공유할수록 네트워크는 더 강해진다. 실패 경험을 나누는 사람은 신뢰를 얻고, 타인의 실패 경험도 학습 자원이 된다. 무엇보다 실패를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정직성’과 ‘회복력’의 상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패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는 언제부터 실패를 ‘경로 이탈’이라 생각하게 되었을까. 실패는 어쩌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만드는 가장 값진 경험일 수 있다. “실패 덕분에 나는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내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세계적인 작가 J.K. 롤링의 말이다.
이제는 실패를 당연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공이라는 결과물 뒤에는 수많은 실패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실패를 감추는 사회는 반복을 부른다. 실패를 공유하고 분석하는 사회는 성장한다. 실패를 커리어의 흠이 아닌 자산으로 삼기 위한 첫걸음은, 실패를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실패는 당신만의 자산이 될 수 있다. 단, 그 실패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