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갈등의 시대, 조정자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자주 싸울까?”
이제는 모두가 느낀다. 어느 날은 쓰레기 소각장 설치 문제로, 또 어느 날은 아파트 재건축을 둘러싸고, 혹은 난민 수용이나 전력 송전선 건설과 같은 전국적인 이슈로… 한국 사회는 매일같이 크고 작은 갈등 속에 있다. 이 갈등의 중심에는 ‘공공성’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공익’을 위한 사업이지만, 누군가에겐 피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이 갈등을 누가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늘 모호하다. 중앙정부는 거시 정책만 말하고, 국회는 정쟁에 바쁘다. 결국 현장에서 부딪히는 건 지자체다. 주민의 분노를 마주하고,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것도 결국 시장과 구청장, 시의원들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생긴다.
"지방정부는 정말 갈등을 조정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자체의 무기력한 중재, 그 끝은 어디인가
그동안 지자체는 공공갈등에 있어 ‘이해당사자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자처해왔다. 하지만 이 역할은 대부분 선언적 수준에 그쳤다. 지방정부는 이해당사자의 요구를 모아 ‘중앙에 전달하는 역할’에 그쳤으며, 실제로 갈등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설득하고 조정하는 기능은 미비했다.
이는 제도적인 한계도 있지만, 역량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울시, 광주시 등 일부 대도시는 '갈등조정 전담부서'나 '갈등관리조례'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형식적인 절차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중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조정가를 확보한 지자체는 손에 꼽힌다.
이런 가운데 갈등은 누적되고, 주민들은 느낀다.
“말은 잘 듣는 척 하는데,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신뢰가 무너지고, ‘님비(NIMBY)’는 '님도 안 돼(YOU-NIMBY)'로 확장된다. 더 이상 지자체가 핑계를 댈 수 없는 이유다.
현장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지방정부의 가능성
하지만 희망이 없지는 않다. 최근 몇몇 지방정부는 ‘직접 갈등을 조정하는 주체’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서울특별시는 2007년 국내 최초로 ‘갈등조정관’을 도입하고, 이후 공공갈등조정협의회를 운영하면서 ‘송현동 부지 활용 문제’와 같은 복잡한 사안을 조율해냈다.
- 광주광역시는 시민참여형 갈등예방 모델을 도입해 철도노선 갈등을 해소하고, 사전 조정 시스템을 통해 공공정책의 시행 전에 갈등의 씨앗을 미리 제거하고 있다.
- 경기도 고양시는 ‘갈등영향분석제’를 시범 도입하여, 정책 수립 단계부터 갈등 발생 가능성을 진단하고 대응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지자체가 더는 전달자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갈등의 해결자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가능성이다.
제도화된 조정 시스템이 필요한 지금
하지만 개별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의지 있는 시장’에 따라 갈등 조정 역량이 천차만별인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자체가 제도적으로 갈등 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국가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선, 지방자치법에 갈등조정 기능을 명문화해야 한다. 현재는 지자체의 자율적인 조례에만 기대고 있어, 법적 강제력이 약하다. 다음으로, 갈등조정 전문가 양성 및 배치가 필요하다. 지역마다 갈등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이들이 실질적인 조정권한을 갖도록 해야 한다.
또한, 주민참여예산제처럼 ‘주민참여형 갈등조정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주민이 단순한 민원인이 아니라, 갈등 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소모적인 충돌을 예방하고, 민주적인 합의 형성 문화를 뿌리내리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식의 전환이다.
“갈등은 실패의 징후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 증거”라는 관점을 지방정부가 가져야 한다. 갈등 없는 사회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생각을 자극하는 결론: 지방정부, 조정자가 아닌 주연이 되어야 할 시간
이제 더는 '중앙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머물 수 없다.
공공갈등의 최전선에 있는 것은 지자체다. 그들이 가진 위치, 정보, 관계망은 어느 기관보다 유리하다. 지방정부가 제대로 된 조정자로 자리 잡는다면, 갈등은 사회 분열이 아닌 ‘정책 개선의 자산’으로 바뀔 수 있다.
갈등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동네의 쓰레기 처리장, 버스 노선 조정, 지역축제의 소음 문제…
이 모든 것이 갈등이고, 이 모든 것이 해결의 실마리다.
지금이 바로 묻고 답할 시간이다.
“지자체는 갈등 조정의 주체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믿고 갈등 해결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