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진로 교육을 하고 있다. 흥미 적성검사를 하고, 직업을 준비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필자는 고등학교에서의 진로 교육에 대한 신뢰가 적어 절반만 믿으라고 말한다. 고등학교에서의 진로지도는 대학 진학에 한정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학의 권위가 추락하고, 대학 교육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시대에 왔음에도,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진학이 곧 진로지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진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 A의 공부포기와 어머니의 다급함
며칠 전에 작년에 상담했던 한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둘째 아들인 A가 공부를 포기하고 매일 게임에 파묻혀 지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다급하게 물어왔다. 필자는 그 아이를 본 적도 없고, 이야기를 해 본 적도 없기에 어떤 대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성적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어머니는 필자의 말을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가슴으로는 대학에 못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해결책을 요구하였다.
A는 광역시의 일반고등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는 3~4등급 정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선생님과 상담하는 가운데, 이 성적으로는 수시전형으로 합격할 수 있는 대학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 자신이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A는 충격을 받았다. A는 지방 거점 국립대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공무원의 길을 가고 싶었다. 자신은 그런 능력이 있을 것을 믿고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선생님과 상담 후에 공부를 포기했다. 자기가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포기한 A에게는 학교에 가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습관에 따라 매일 학교에 가기는 하지만,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기만 했다. 학교 공부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것이기에, 대학에 갈 수 없는 자신에게는 그런 공부는 의미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들도 자는 A를 깨우지 않았다. 아니 ‘깨우지 못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을 잘못 깨우다가는 ‘아동학대죄’로 걸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우다가 어려움을 겪는 교사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서 많이 보도되었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면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어려운 상황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가온 기말고사, A의 성적은 9등급이 많았다. 성적표를 받아본 어머니는 애가 탔지만, A는 대학에 가지 않고 공무원 준비를 하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에 빠졌다. 방학이라 아침부터 새벽까지 폐인이 되다시피 게임을 할 뿐, 공부나 공무원 준비를 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어머니가 공무원 준비를 할 수 있는 책을 사 주었다. 하지만, A는 책을 받고 한 번 쳐다보았을 뿐 공무원 준비도 하지 않고 여름방학을 매일 새벽까지 게임을 하면서 모두 보내고 있다.
그 어머니는 당장 할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했다. 지기의 뜻대로 아들 A를 바꾸고 싶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대학에 도전하든지, 공무원 준비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기를 바랐지만, 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들은 잔소리로만 듣고, 감정적으로 어머니와 부딪히면서 관계만 나빠질 뿐이었다. 그런데도 대학에 가지 못하면 아들의 인생은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당장 공부와 꿈을 포기한 고등학생 아들을 움직일 비방을 갈구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런 비방을 알려주지 못했다. 진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진로의 4단계 시장
진로는 최소한 4단계의 시장으로 구성된다. 진학(進學) 시장부터 취업(就業) 시장, 결혼(結婚) 시장, 전직(轉職) 시장이다. 이 중에 A는 진학 시장에 진입을 준비하는 시점이었다. 그런 아이에게,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선생님의 단언은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선생님은 더 열심히 공부하여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라고 권유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A는 도전조차 포기했다. 누구의 책임일까? 말을 좀 더 부드럽게 바꾸었으면 어떨까? 앞으로 발전 가능성을 이해시켰으면 어떨까? 성적보다 아이를 더 바라보았으면 어땠을까?
진학 시장에서 4년제 일반대학 진학 만이 진로에서 중요한 경로가 아니다. 취업이나 창업, 전문대학이나 폴리텍대학, 그리고 독학사도 중요한 진로의 경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최상의 진로라는 생각으로 학생을 지도한다. 하지만 일반대학에 가는 사람이 모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진학하는 순간 반 이상이 실업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고, 오히려 진학하면서 진로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다. 매년 전문대학이나 폴리텍대학을 지원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학교에서 보내고자 하는 일반대학 출신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사회와 기업의 환경이 변하면서 일자리가 급변하는데, 학교에서의 진로지도는 이것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로는 평생의 경로이고, 여러 단계를 거친다. 일반대학 진학만이 제대로 된 진로가 아니다.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경제적 자립을 위한 능력을 키우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진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학생들은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주변 환경과 사회 변화를 극복하는 길을 선택하여 좋은 진로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을 경시하고 오로지 현재의 성적으로만 학생의 진로를 단언하는 곳이 학교와 사교육이다. 그곳의 종사자들은 사회와 경제의 변화보다 대학의 합격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사회적인 변화를 학생의 진로지도에 활용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 진로의 주인공은 학교가 아니다
사회의 변화와 일자리의 변화, 세계 경제에서의 진로를 고민하는 것의 일차적 책임은 학생 개인과 부모다. 그들은 최종 책임도 진다. 학교에서의 진로지도는 그러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학생 개인보다 고민도 적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학교에서의 진로지도는 한 귀로만 들어도 충분하다고 본다. 참고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개인과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더 많이 부딪히고 고민하는 부모의 몫이다. 대학의 학과가 존속한다고 해서 그 분야의 일자리가 많은 것이라 보장할 수 없다.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일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다양한 일이 존재하고, 그 일을 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일이 더 큰 성공을 가져오기도 한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 할 수 없다. 다만, 성적이 우수하지 못하면 대학에 가지 못하고, 대학에 가지 못하면 진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은 정답이 아니다. 진로는 여러 과정과 단계가 있다. 그리고 돈을 버는 일자리를 향해서 생물처럼 변하고 확장되고 심화한다. 그 변화는 오로지 개인이 맞닥뜨리고 극복하여야 한다. 학교에서의 진로지도는 그것을 모를 때도 많다. 그러니 대학에 못 간다고 단언하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자. 그렇게 단언하는 사람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현재의 대학 교육에 대한 기업에서 평가하는 아주 냉혹하다. 신입사원보다 경력직을 채용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기업은 기업주가 돈을 버는데 필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좋은 대학 출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의 진로는 청소년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그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좋은 대학에 가야만 한다고 단언하는 어른이 있다면 한 귀는 막고 한 귀로만 그의 말을 듣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