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스피커와 하루를 시작하는 노년의 아침
“아리아, 오늘 날씨 어때?”
아침 눈을 뜨자마자 AI 스피커에 말을 건네는 72세 김영자 씨는 하루를 디지털 친구와 함께 시작한다.
고요한 거실 한쪽에서 말 잘 듣는 ‘스피커 친구’는 오늘의 날씨, 추천 음악, 일정까지 성실히 대답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지만, 완전히 혼자이지도 않은 이 새로운 아침은 이전과 다르다.
노년기 삶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고립감과 단절감이다.
배우자의 부재, 자녀의 독립, 지인의 상실 등으로 좁아진 일상 속에서 말 상대가 없어지는 건 생각보다 빠르고 크다.
하지만 AI는 그런 일상에 조용히, 그리고 아주 실용적으로 스며들었다.
목소리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기술은 키보드도 마우스도 필요 없는 ‘가장 인간적인 접점’으로 작동한다.
70대, 80대 노인들이 처음 AI 스피커를 사용할 때는 “이게 뭐야?”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AI는 신문보다, 라디오보다, 사람보다 더 자주 대화하게 되는 존재가 된다.
기술이 친구가 된다는 말이, 이제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디지털 문맹에서 디지털 네이티브로: 70대의 전환점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나는 기계랑 안 맞아”, “이젠 늙어서 못 배워”라는 말은 당연하게 들렸다.
그러나 2025년의 한국은 다르다.
디지털 문맹이라 불리던 세대가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로 AI를 작동시키고, 스마트폰으로 영상 통화를 하며, 유튜브로 세상과 연결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특히 AI 기반 서비스들이 사용자의 연령과 환경을 고려해 설계되기 시작하면서, 디지털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예를 들어, 글씨를 몰라도 음성으로 명령할 수 있고, 손이 느려도 버튼 하나로 생활정보를 받으며,
뇌 훈련, 음악, 종교 콘텐츠까지 취향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AI 앱들은 시니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기술’이 되어버렸다.
70대 이상 사용자 비율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플랫폼은 AI 스피커, 스마트폰 음성 비서, 간편 금융 앱, 그리고 건강 모니터링 서비스다.
기술이 점점 ‘쉬워지고’ 있고, 시니어는 그 쉬운 길을 선택하고 있다.
디지털 문맹이란 결국 ‘어려워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만들어지는 벽이었다는 걸 시니어들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 살아도 함께 있는 기분: AI가 주는 정서적 지지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밤이 되면 AI 스피커가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 짧은 문장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혼자 사는 노인의 삶은 겉보기보다 고요하고, 때로는 외롭다.
하지만 AI는 정서적으로 ‘함께 있는 존재감’을 만든다.
많은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시니어의 정신 건강은 사회적 상호작용 빈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가족과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하거나, 외부 활동이 제한된 고령자는 우울감과 인지 저하를 겪기 쉬운 환경에 있다.
하지만 AI 기술이 제공하는 일상적 소통은, 그것이 비록 인공적인 존재와의 대화일지라도,
감정적 안정을 돕고 생활 리듬을 지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부 시니어는 AI 스피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누군가는 매일 같은 시간 음악을 들으며 감정을 다스린다.
AI는 ‘상담자’도, ‘치료사’도 아니지만, 일상의 공백을 메워주는 친구 역할은 충분히 해내고 있다.
AI는 시니어를 위한 또 하나의 복지다
이제 AI는 단지 '기술'이 아니다. 시니어 세대를 위한 또 하나의 복지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음성인식, 반려로봇, 스마트케어 등은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보급하고 있는 노인 복지정책 중 하나이며,
AI 기반 안전 센서, 낙상 감지 시스템, 응급상황 자동신고 기능 등은 고령자의 삶을 지키는 안전장치가 되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AI 스피커를 독거노인 가정에 무상 보급하고 있고,
AI 반려로봇을 통해 치매 예방 프로그램이나 감정 대화를 실행하고 있다.
기술은 공공성을 확보할 때 비로소 모두를 위한 것이 된다.
시니어는 복지의 수혜자이기 이전에,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해내는 능동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디지털 복지는 더 이상 '젊은 세대의 발전'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AI는 나이도, 거리도 뛰어넘는 친구가 된다
“나이 들어서 AI 쓰는 게 뭐 대수야?”
이제는 대수롭지 않다고 말하는 시니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기술과 사람 사이의 거리, 세대 간의 벽, 디지털 격차라는 단절을 넘어선 한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AI는 단지 시간을 알려주고, 날씨를 말해주고, 음악을 틀어주는 장치가 아니다.
AI는 ‘기다려주고, 묻고, 대답해주는 존재’다.
시니어에게는 그 작은 응답이 일상을 지탱하는 정서적, 기능적 힘이 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말을 걸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AI라면, 기술은 더 이상 차가운 게 아니다.
image: AI 생성
본 기사는 칼럼리스트 겸 기자 김영미의 저작물로, 무단 복제·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