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어른은 스티커를 붙이지 않는다 – 교육의 진짜 시작은 '듣는 것'에서
스티커 한 장이 교실을 지배한다. ‘잘한 일’에는 칭찬 스티커, ‘문제 행동’에는 벌점 스티커. 겉으로는 단순한 보상과 제재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교육의 방향성과 철학이 깃들어 있다. 1999년 첫 출간된 동화 『나쁜 어린이 표』는 바로 이 지점에 문제를 제기했다. 아이의 행동을 ‘좋음’과 ‘나쁨’으로 단순히 나누는 현실. 그리고 그 이분법 속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로부터 25년이 지나도 『나쁜 어린이 표』는 여전히 책장에서 꺼내 읽히고 있다. 왜일까? 시대는 변했지만, 교실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아이의 이름은 건우에서 또 다른 누구로 바뀌었을 뿐, 질문은 그대로다.
“우리는 지금도 아이에게 스티커로 말하고 있는가?”
표 하나에 담긴 무게 – 아이의 감정은 왜 무시되었는가
“왜 나쁜 어린이 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나쁜 어린이 표』의 주인공 건우는 이유 없이,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나쁜 어린이’로 낙인찍힌다. 책상 흔들기, 우유 흘리기, 장난치기 등 평범한 행동 하나하나가 교사의 눈에는 ‘문제행동’으로 보이고, 스티커로 즉각적인 반응이 돌아온다. 그때마다 건우는 혼란에 빠진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나쁜 아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스티커 하나는 종이보다 얇지만, 아이의 마음에 남기는 자국은 깊다. 아이의 감정과 맥락은 삭제되고, 결과만 남는다. 어른에게는 일상적인 훈육이지만, 아이에게는 자존감의 균열이다. 그 무게를 우리는 과연 알고 있었을까?
벌점과 보상, 그 이분법이 만든 교실의 민낯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는 보상과 벌점 시스템은 매우 익숙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긍정적인 강화는 아이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하지만 『나쁜 어린이 표』는 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다. 교사는 단순히 결과만 보고 ‘좋다’와 ‘나쁘다’를 판단하고, 아이는 그 판단 기준을 알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진다. 이는 곧 아이와 교사 사이에 소통 단절을 낳는다. 아이는 설명 없이 벌을 받고, 교사는 질문 없이 판단한다. 이분법적 구조는 교육을 단순화하고, 아이의 다면적인 행동을 놓치게 만든다. 결국 교실은 점점 더 통제와 평가 중심으로 흐르고, 아이의 감정은 그 구조 속에서 침묵당한다.
'나쁜 어린이'라는 낙인이 남긴 흔적
가장 위험한 것은 아이가 그 낙인을 내면화하는 순간이다. 건우는 처음에는 억울함을 느끼고, 그 감정을 일기장에 풀어낸다. 하지만 점차 “나는 정말 나쁜 아이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단지 한 권의 동화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교실에서도 아이들은 ‘벌점’이나 ‘지적’이라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자존감과 자기 정체성에 영향을 받는다. 이는 단순한 훈육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지점이다. 교육이 아이에게 주는 영향은 시험 점수보다 훨씬 깊고 오래 간다. 그리고 그 기준이 ‘설명 없는 낙인’이라면, 교육은 아이를 성장시키기보다 멈추게 만드는 족쇄가 된다.
25년이 지났어도 ‘같은 방식’… 『나쁜 어린이 표』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쁜 어린이 표』는 출간 25주년을 맞아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0쇄 돌파, 150만 부 이상 판매라는 숫자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그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2024년판은 일러스트가 바뀌고, 시대적 감각을 반영했지만, 핵심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그만큼 이 이야기가 전하는 질문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여전히 많은 교실에서는 스티커로 아이를 판단하고, 감정 대신 결과를 말한다. 교육은 기술적으로는 진보했지만, 관계와 감정의 층위에서는 여전히 제자리다. 『나쁜 어린이 표』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아이를 판단하기 전에, 우리는 그 아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좋은 어른은 스티커를 붙이지 않는다 – 교육의 진짜 시작은 '듣는 것'에서
건우의 일기장이 선생님에게 발견되며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처음으로 선생님은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건우 역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이 변화는 ‘벌’이 아닌 ‘대화’에서 시작된다. 결국 교육은 시스템보다 관계이고, 지식보다 이해다. 좋은 어른은 아이의 실수에 분노하기보다, 그 속마음을 묻는다. 그리고 아이가 말을 잃었을 때, 기다릴 줄 안다. 『나쁜 어린이 표』는 동화지만, 단지 아이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교육을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문학적 도전이다. 스티커를 붙이는 손이 아니라, 귀 기울이는 귀를 가진 어른. 그것이 진짜 ‘좋은 선생님’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