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 속 술, 신농과 제왕의 발명품
“술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기이한 물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술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신성한 물질이었고, 문명의 시작과 함께 탄생한 도구였다. 중국에서 술의 기원을 찾으려면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사기》나 《산해경》 등 고대 문헌에 따르면, 술은 약초와 농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농(神農)이 발명했으며, 이후 황제 헌원이나 요순 시대의 군주들이 이를 다듬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신화에만 기대는 것은 아니다. 고고학은 그것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님을 입증했다. 1983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졸가(贾湖) 유적에서 발견된 약 9,000년 전의 도자기 잔에서 알코올 발효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술의 유전자’는 발효된 쌀, 꿀, 산사나무 열매를 섞어 만든 초기 형태의 주류로, 인류가 정착 농경 사회에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술’을 발명했음을 보여준다.
즉, 술은 중국 문명의 시작과 함께 존재해왔고, 단순한 기호품이 아닌 생존과 의식, 치료와 치유, 권력과 통치의 상징으로 진화해왔다. 고대 중국에서 술은 단순한 음복(飮福)의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통제하는 도구였던 셈이다.
술은 권력이다: 제례와 정치의 도구로서의 주
중국에서 술은 국가 체계 속에 제도적으로 편입되어 있었다. 주 나라 시대에 이르면 ‘술을 빚는 직책’과 ‘술의 의례를 관장하는 사관’이 따로 존재했으며, 이는 술이 단지 마시는 것이 아니라 통치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유가(儒家)는 술을 도덕과 예(禮)로 통제하려 했고, 도가(道家)는 술의 해방성과 자유로움을 찬양했다. 이런 사상적 배경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중국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곧 인간 관계, 권력, 사회적 서열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례용 술(祭酒)이다. 조상에게 바치는 술은 곧 조상을 매개로 한 하늘과의 교감이자, 천명(天命)을 위임받았다는 정치적 정당성의 표현이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도 태산에 올라 술로 하늘에 제를 올린 것이었다.
이처럼 중국술은 역사 내내 제례, 혼례, 상례, 군례 등 모든 국가의례와 함께 존재했고, 술을 통해 왕권과 권위가 정당화되었다. 술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통치하는 도구였던 것이다.
중국술의 정체성: 발효에서 증류까지의 진화
중국술의 진화는 발효에서 증류로의 전환으로 요약할 수 있다. 초기에는 쌀, 기장, 수수 등을 발효시켜 만든 황주(黃酒)가 중심이었지만, 당나라 중기 이후 이슬을 모으는 방식의 증류 기술이 전해지면서 지금의 백주(白酒, 바이주)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송나라와 명나라에 이르러 술은 ‘향기’와 ‘순도’라는 개념으로 다듬어졌고, 지역별로 특화된 양조 방식이 생겼다. 예컨대 저장성(浙江省)의 소흥주(紹興酒)는 황주의 대표 주자로, 문인과 학자들의 술로 여겨졌으며, 사천성(四川省)과 귀주성(貴州省)의 고량주(高粱酒)는 강한 도수와 향으로 민중의 술이 되었다.
오늘날 중국의 대표 주류인 바이주(白酒)는 곡물을 발효시킨 후 증류해 40도 이상의 도수를 가진 술이다. 생산 방식에 따라 농향형(濃香型), 청향형(清香型), 장향형(醬香型) 등으로 나뉘며, 이는 단순한 주류의 구분을 넘어 문화와 지역성, 정체성을 반영하는 체계이기도 하다.
즉, 중국술은 단순한 알코올이 아니라, 기후, 곡물, 지역문화가 녹아든 정체성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마오타이와 국가 브랜드: 현대 중국이 술에 담은 야망
중국술의 현대적 상징은 단연 마오타이주(茅台酒)다. 귀주성 마오타이진(茅台鎮)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생산되는 이 술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 국경연회에서 첫 건배주로 쓰이며 ‘국주(國酒)’로 자리 잡았다. 이후 마오타이는 단순한 명주가 아닌, 국가 브랜드이자 외교 수단이 되었다.
주은래 총리는 외국 국빈들에게 반드시 마오타이를 대접했고, 닉슨 미국 대통령이 방중했을 때도 마오타이가 등장했다. 술 한 병이 국격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오타이는 고위 간부의 상징, 부와 권력의 은유로 기능하며, 하나의 정치문화적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술 산업을 단순한 소비재 산업이 아닌 문화 수출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바이주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로 수출되며 ‘중국의 맛’을 알리는 선봉장이 되었다. 마오타이 외에도 우량예(五粮液), 양하대곡(洋河大曲) 등 수많은 지역 명주들이 세계 무대에 진출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무역이 아니라 문화 주권의 선언과도 같다.
중국에서 술은 마시는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의 연대기이자, 정치의 언어, 정체성의 상징, 그리고 미래 전략의 도구다. 황제의 잔에서 시작된 한 방울은 이제 세계 외교의 건배로 이어진다.
한국의 전통주에는 왜 마오타이 같은 국가 브랜드가 없는가?
왜 우리의 술은 '국가적 상징'으로 성장하지 못했는가?
중국술의 역사와 현재를 돌아보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지 술의 품질이 아니라 그 술을 둘러싼 이야기, 의미, 전략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