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만 독자가 사랑한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의 문학적 의미는?
‘그 많던 싱아…’가 여전히 읽히는 이유
1992년 첫 출간 이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독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소설이 있다. 바로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다. 170만 부라는 경이적인 판매 기록은 이 작품이 단지 한 시대의 유산이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과 공감을 품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 소설은 단순한 회고담이 아니다. 작가 박완서가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 쓴” 이 작품은 유년기의 감각과 시대의 풍경, 인간 내면의 결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자전’이라는 고백적 서사와 ‘문학’이라는 형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소설은, 지금도 독자들에게 유효한 감정의 언어로 읽힌다.
30년을 넘겨 사랑받는 국민소설의 힘
『그 많던 싱아…』는 단기간에 소비되고 사라지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중·고등학교 필독서로 선정되며 교실에서부터 서점, 독서모임, 독립서점까지 다양한 경로로 독자들과 만났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핵심은 ‘보편성’과 ‘공감’이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유년기, 상실과 성장, 가족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은 시대를 불문하고 감정의 언어로 작용한다. 특히 작가가 묘사한 1930년대 시골 마을 박적골과 1950년대 전쟁 직후의 서울은 한 개인의 기억이면서도, 당대 한국인의 집단 기억을 대변한다.
문학평론가 정이현은 “『그 많던 싱아…』는 작가의 문장 너머에서 시대의 맥박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했다. 이는 이 소설이 단순히 ‘과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전과 문학 사이, 박완서의 고백적 서사
박완서 작가는 『그 많던 싱아…』를 두고 “기억력에만 의존해 쓴 작품”이라고 밝혔다. 회고의 틀 안에서 시작된 서사는 점차 문학의 형식으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자전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과 고백적 서사의 매력이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박완서가 발표했던 「엄마의 말뚝」 연작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김윤식 평론가는 이 소설을 ‘엄마의 말뚝 4’로 명명하며, 박완서 문학의 뿌리를 집약한 텍스트라 평했다. 강인한 어머니, 반골기질의 오빠, 혼란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나’의 시선은 단지 개인적인 서사를 넘어서, 그 시대 한국 여성의 정체성과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고백의 진정성과 문학적 언어가 맞물리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유다. 글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작가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하게 된다.
유년의 기억으로 시대를 증언하다
『그 많던 싱아…』는 단지 유년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해방기,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현대사의 굵직한 흐름을 배경 삼아 진행된다. 소설 속 ‘나’는 그 시대를 통과하며 성장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싱아’는 단순한 풀이 아니라, 유년의 순수와 자연, 그 시절의 감각을 상징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전쟁과 혼란이 밀려오면서 그 싱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그 많던 순수와 사랑,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시대적 탄식이 된다.
박완서는 이 작품에서 가족의 해체, 이념의 충돌, 여성의 생존 전략, 세대 간 갈등 등 당시 사회가 품고 있던 복잡한 이슈들을 섬세하게 녹여낸다. 이는 소설이 가진 ‘증언문학’으로서의 역할을 강화시키며,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사회사적 가치를 획득하게 만든다.
‘기억문학’으로 확장된 문학의 경계
『그 많던 싱아…』는 출간 이후 수많은 문학 연구자들과 작가들에게 ‘기억문학’의 대표작으로 회자되었다. 이 작품은 기억을 단순한 소재로 다루지 않는다. 기억은 문학의 출발점이자, 그 자체로 재구성의 대상이 된다.
후속작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그 많던 싱아…』와 연결되는 자전적 연작으로, 박완서 문학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킨다. 이들 작품을 통해 작가는 단편과 장편, 픽션과 논픽션, 개인과 사회, 여성성과 민족성이라는 다양한 문학적 주제를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리커버 특별판, AI 낭독 공연 등 최근의 문화적 재조명 또한 이 작품의 영향력을 새롭게 각인시키고 있다. 박완서 문학은 지금도 현재형으로 읽히며, ‘기억의 기록자’로서의 문학이 어떻게 독자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한국 현대문학의 원형, ‘그 많던 싱아…’의 현재적 가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한국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원형이자 기념비적 텍스트다. 한 개인의 기억이 문학이 되고, 그 문학이 시대의 얼굴을 증언하며, 오늘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감정과 질문을 던진다.
박완서라는 이름은 단지 한 시대의 작가가 아니다. 그녀는 기억을 서사로 바꾸는 능력을 가진 이 시대의 문학적 유산이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단지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어떻게 살아내고 기록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