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은 왜 불안으로 느껴지는가: 사회적 일치 강박의 뿌리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것은 이 사회가 가진 가장 오래된 폭력이다.”
이 문장은 단지 거창한 철학적 선언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정상’이라는 틀에 적응하도록 교육받는다. 머리를 염색하면 문제아, 수업 시간에 질문이 많으면 튀는 아이, 조용하면 사회성이 떨어진 사람이라는 식으로 ‘표준형 인간’에 부합해야 안심할 수 있다. 그 결과,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곧 불안이 된다. 집단에서 배제될까 두렵고,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살아간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사람은 무대 위의 배우처럼, 타인의 기대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조절한다”고 했다. ‘나’보다 ‘그들이 기대하는 나’를 먼저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조정된 자아가 점점 나를 집어삼키고, 결국 ‘진짜 나’가 무엇이었는지를 잃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왜 그 다름은 공포가 되는 걸까? 그 불안의 정체는 ‘있는 그대로의 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과 비슷해 보이기’ 위해 에너지를 소진하며, 결국 삶 자체가 피로해진다.

정체성의 충돌: 내가 원하는 나 vs. 사회가 기대하는 나
정체성은 단지 이름이나 직업, 취향의 조합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지속적인 대화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나에 대한 대화’에 너무 많은 외부 목소리가 끼어든다는 데 있다. 부모는 ‘안정적인 직업’을 말하고, 친구는 ‘인싸처럼 행동하라’고 한다. SNS는 ‘감각 있고 세련된 나’를 강요하고, 조직은 ‘무난하고 튀지 않는 나’를 요구한다. 이 모든 목소리가 머릿속에 동시에 들려올 때, 우리는 방향을 잃는다.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과 사회가 기대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겪는 갈등은 단순한 심리적 불편을 넘어서, 우울과 불안,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 충돌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정작 어떤 선택이 ‘정답’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정체성의 우선순위’를 세우는 일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중심으로 나를 설계하는 것. 사회의 요구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를 우선 듣고 그 위에 외부 기대를 ‘필터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정말 약점일까?
우리는 다름을 결핍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다름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곧, 나만의 사고 방식, 경험, 감정, 관점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창의력의 원천이며, 변화의 시작점이다. 다름은 ‘기능’이 아니라 ‘관점’이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에서는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ASD)을 가진 사람들을 데이터 분석과 보안 분야에 적극 채용하고 있다. 남들과 다른 사고 방식이 오히려 문제 해결 능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과 문화는 ‘다름’을 기반으로 확장된다. 기존 질서를 의심하고 경계를 넘으려는 이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감각,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만약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선택을 하고, 같은 기준으로 움직였다면, 이 세상은 고요한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다름은 약점이 아니라 균형을 위한 필수 요소다. 세상은 다양성을 필요로 하고, 그 다양성은 바로 우리 각자의 ‘다름’에서 시작된다.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과 태도
‘나답게 살아간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타협 없는 고집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는 선택의 연속이다. 방송인 홍석천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사회적 비난과 고립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숨지 않았고, 그 선택은 결국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삶도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배우 김선호 역시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로 내성적이고 불안한 사람이었지만, 연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소통하고 삶을 재정의했다. 그는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자기다운 배우’가 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진짜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들은 사회적 기준을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자기 기준을 세웠고, 그에 따라 살았다.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고 믿는 것이다. 비교와 눈치가 일상이 된 시대에, 그런 믿음 자체가 가장 강력한 저항이자 자유다.
다름은 상처가 아니라, 방향이다
‘남들과 다르면 불편하다’는 인식은 우리를 작고 둥글게 만든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과 변화는 늘 다름에서 시작된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어쩌면 이 세상에 내가 필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만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납득하는 길’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타인의 기대보다 내면의 기준을 더 신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름은 상처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 방향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길이 누군가의 지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