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이 늦어요’로 시작된 불안, 모든 게 자폐는 아니다
“또래 아이들은 다 말을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아직도 '엄마'도 안 해요.” 많은 부모가 이렇게 말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인다. 특히 또래 아이들과 비교할수록 불안은 커진다. 하지만 언어 발달 속도는 아이마다 다르다. 모든 언어지연이 자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불안이 커지는 이유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의 초기 증상이 언어지연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이 늦다고 해서 섣불리 '자폐'를 떠올리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무조건 기다리기에도 불안하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느린 발달'이고, 어디서부터가 '신경 발달 문제'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언어지연과 자폐의 차이를 명확히 알고, 부모가 판단할 수 있는 구별 신호를 숙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어지연과 자폐 초기증상, 어디서 갈리는가?
언어지연은 단어를 말하거나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 또래보다 늦는 경우를 말한다. 이 아이들은 언어 이해력이 뛰어나고, 표정이나 몸짓으로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인지 능력이나 사회성 발달에는 큰 문제가 없다. 반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소통, 상호작용, 행동 영역 전반에 걸친 어려움이 핵심이다. 말이 늦는 것을 넘어서, 눈맞춤, 표정 교환, 감정 공유 등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다. 특정 장난감에 집착하거나, 반복적인 행동을 지속하는 경우도 많다. 즉, 자폐는 단순한 말의 늦음이 아니라, 아이가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의지’ 자체가 부족한 경우에 의심해야 한다. 언어지연 아동은 주변 자극에 반응하고 부모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눈을 맞춘다. 자폐 아동은 종종 **‘사람보다 물건에 더 반응’**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부모가 체크해야 할 5가지 핵심 구별 신호
아이의 발달을 스스로 점검하고 싶은 부모를 위해, 아래 5가지를 중심으로 아이의 행동을 살펴보면 좋다. 단, 이는 참고용이며, 궁극적인 진단은 전문가가 내려야 한다.
① 눈맞춤 여부
❗ 자폐 의심: 이름을 불러도 거의 반응하지 않음. 눈을 맞추려 하지 않음.
✅ 언어지연: 눈을 자주 맞추며 관심을 보임. 다만 말을 하지 못함.
② 비언어적 소통
❗ 자폐 의심: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음. 손짓, 몸짓이 거의 없음.
✅ 언어지연: 손으로 가리키며 원하는 것을 표현하려 함. 몸짓도 다양함.
③ 모방 행동
❗ 자폐 의심: 표정이나 동작을 따라 하지 않음. 사회적 놀이에도 관심 없음.
✅ 언어지연: 간단한 행동은 모방함.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노는 데 관심 있음.
④ 놀이 방식
❗ 자폐 의심: 자동차 바퀴만 돌리는 등 특정 행동 반복에 집착.
✅ 언어지연: 다양한 방법으로 놀이를 시도하고, 상상놀이에 관심 있음.
⑤ 공유 관심
❗ 자폐 의심: 부모에게 관심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음. 함께 보기 행동이 없음.
✅ 언어지연: 흥미 있는 물건이나 행동을 부모와 공유하려는 시도가 있음.
이러한 차이는 섬세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하지만 매일 아이와 함께 지내는 보호자야말로 가장 예민한 레이더를 가진 사람이다. 의심이 든다면, 관찰 일지를 기록하고,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가 진단 전, 부모가 할 수 있는 현명한 대응법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은 때때로 위험할 수 있다. 자폐는 조기 개입을 통해 상당 부분 발달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후 18개월~36개월은 ‘골든타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는 뇌의 유연성이 높아, 개입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행히도 요즘은 다양한 초기 선별 도구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M-CHAT-R/F(18~24개월 대상), BeDevel 걸음마기 아동 행동발달 선별 척도 등이 있으며, 전문 발달센터나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통해 초기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부모가 먼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다음과 같은 행동이 도움이 된다:
아이가 눈맞춤을 하면 미소로 반응해준다.
손짓이나 소리 없이 아이가 원하는 걸 맞춰주지 않는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때까지 기다려 본다.
놀이 시간 중 아이가 주도할 수 있게 해준다.
자주 말 걸기보다 아이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말로 덧붙이는 방식이 좋다.
이러한 방식은 자폐 여부를 떠나, 아이의 전반적인 발달을 돕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부모의 반응과 관심이 아이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일 수 있다.
자폐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개입의 대상이다
'말이 늦다'는 한 문장이, 어떤 부모에겐 깊은 두려움이 된다. 하지만 모든 언어지연이 자폐는 아니며, 자폐라고 해도 조기 개입과 올바른 이해가 함께라면 아이의 삶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핵심은 기다림이 아니라 관찰과 행동이다. 무작정 불안해하거나, 반대로 무시하지 말고, 아이의 신호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전문가와 함께 걸어가야 한다. 언어지연과 자폐 초기증상은 겉으로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소통하려는 '의지'의 유무, 바로 그 지점에서 갈린다. 지금 아이의 눈을 바라보자. 그리고 그 눈빛에 반응하자. 그 작은 눈맞춤이,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가장 큰 시작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