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속으로 사라진 교실 4
“괜찮아. 우리도 다 무섭거든. 근데 같이 있으면 괜찮잖아.”
그 따뜻한 말에 지오의 가슴 속 얼음 같은 두려움이 조금씩 녹아내렸습니다.
바다는 갑자기 잿빛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산호초의 불빛도 꺼지고, 해파리의 은빛도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두려움에 질렸습니다.
“왜 이렇게 어두워졌지?”
혜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수진이 팔을 움켜쥐며 속삭였습니다.
“나 무서워. 아무것도 안 보여.”
그리고 그 순간, 지오의 수첩이 ‘스르륵’ 하고 닫히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안 돼! 내 수첩이.”
지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수첩이 사라지자 아이들은 마치 길잡이를 잃은 새들처럼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사방에서 으르렁거리듯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곧이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검은 물고기 떼가 몰려왔습니다.
그 눈빛은 차갑고, 지느러미는 칼날처럼 날카로웠습니다.
“으악! 물고기다!”
민호가 뒤로 물러서며 외쳤습니다.
아이들을 에워싸는 물고기 떼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순간, 수진이 손을 꽉 움켜쥐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해. 도망칠 수는 없어.”
민호도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다 같이 싸우자.”
아이들의 눈빛 속에 두려움과 용기가 동시에 번져갔습니다.
하지만 지오의 마음은 점점 더 흔들렸습니다.
‘어떡하지 난 물이 무서운 데. 이 상황을 바꿀 방법이 있을까?’
그때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엄마가 자장가처럼 불러주던 바닷속 노래.
그 노래는 언제나 지오의 두려움을 가라앉혀 주곤 했습니다.
지오는 두 손을 꼭 모으며,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습니다.
“라—라라—”
잔잔한 선율이 물결을 타고 퍼져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지오를 바라봤습니다.
“지오가 노래를?”
수진이 속삭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검은 물고기 떼가 멈칫하더니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차가운 눈빛이 조금씩 풀리며, 마치 잠든 듯 고요해졌습니다.
“됐어! 물고기들이 멈췄어!”
민호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지오의 손 위로 ‘톡’ 하고 작은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그 물방울은 다른 물과 달리, 환한 빛을 품고 있었습니다.
“우와, 반짝인다!”
혜진이 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습니다.
“이게 열쇠일지도 몰라.”
지오는 물방울을 꼭 감싸 쥐었습니다.
손바닥에서 퍼져 나오는 따뜻한 빛이, 그의 떨리던 가슴까지 차분히 감싸주었습니다.
순간, 사라졌던 지오의 수첩이 눈앞에 나타나며 다시 열렸습니다.
그리고 파란 지도는 다시 살아 움직였습니다.
“돌아왔다!”
지오의 눈에 용기의 빛이 반짝였습니다.
아이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길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여전히 손을 꼭 잡은 채, 거대한 수조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수조 안에서는 물결이 부드럽게 일렁이며, 아이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수조가 낮은 울림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너희는 마지막 문을 열 준비가 되었니?”
아이들은 순간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혜진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응, 준비됐어.”
수진도 용기를 내어 속삭였습니다.
“우린 함께 왔으니까.”
지오는 깊게 숨을 고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준비됐어요.”
그러자 수조 안의 물결이 활짝 갈라지듯 흔들리며,
빛나는 문 하나가 서서히 열렸습니다.
아이들이 빛 속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익숙한 공간이 펼쳐졌습니다.
“어, 교실?” 민호가 놀라서 외쳤습니다.
정말 교실이었습니다.
칠판도, 책상도, 창문도 모두 그대로 있었죠.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교실이 아니라, 마치 물거품 속에 반짝이는 기억의 교실이었습니다.
책상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칠판에는 반짝이는 물방울 글씨가 흘러내렸습니다.
창문 너머로는 물결이 가볍게 일렁이며 빛을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아름답다.”
혜진이 숨을 죽이며 말했습니다.
수진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바닷속에서 꾼 꿈같아.”
그 순간, 교실 한가운데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지오야.”
지오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선생님?”
목소리는 부드럽게 이어졌습니다.
“바다는 네 마음과 같단다.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너는 더 깊고 넓은 용기를 얻게 되지.”
지오의 가슴은 뭉클해졌습니다.
‘내 마음 바다랑 같다고?’
그 말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민호가 지오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습니다.
“봐, 지오. 네가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지오의 손에 수첩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수첩은 은은하게 빛나며, 마지막 과제를 기다리는 듯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심을 적어야 해.”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지오는 펜을 잡으며 손끝이 떨렸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글씨를 써 내려갔습니다.
‘나는 물이 무섭지만, 이제 조금은 좋아졌어.’
글자를 쓰자마자, 수첩이 환하게 빛을 내뿜었습니다.
그 빛은 아이들 하나하나를 감싸며, 모두의 모습을 원래대로 되돌려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돌아왔어 우리가 돌아왔어!”
혜진이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습니다.
지오는 수첩을 꼭 안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두려워도 괜찮아.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
지오가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조용했습니다.
물결도, 빛나는 문도, 해파리도 모두 사라져 있었죠.
“지금 어디지?”
지오가 고개를 들자, 눈앞에는 언제나 보던 교실이 있었습니다.
칠판 앞에는 선생님이 서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죠.
“오늘 수업 재미있었지?”
지오는 눈을 깜빡이며 숨을 삼켰습니다.
‘정말 꿈이었을까?’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분명 달랐습니다.
민호가 슬쩍 지오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습니다.
수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혜진은 눈빛으로 무언가를 전하려는 듯 살짝 웃었습니다.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꿈을 꾸었고, 같은 모험을 다녀왔다는 걸.
지오의 가슴은 따뜻한 무언가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그래,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어.’
그 순간, 창밖에서 또다시 파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촤아아악—’
아이들이 동시에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멀리서 반짝이는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또, 파도 소리야.”
혜진이 속삭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지오는 몸을 움츠렸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그 소리가 오히려 부드럽고, 마음을 감싸는 노래처럼 들렸습니다.
지오는 미소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괜찮아. 이제 무섭지 않아.”
지오가 조심스럽게 수첩을 펼쳤습니다.
그곳에는 마지막으로 한 문장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네 마음속의 바다는 언제든 다시 열릴 수 있어.’
지오의 눈이 커졌습니다.
“이건 내가 쓴 글씨가 아니야. 누군가 남겨둔 거야.”
민호가 속삭였습니다.
“아마 바다가 남겨준 선물 아닐까?”
수진은 살짝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그럼 우리 마음속 바다는 계속 살아 있는 거네.”
지오는 수첩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가슴 속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 따뜻한 용기가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바다는.”
지오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천천히 미소 지으며 속삭였습니다.
“생각보다 멋져.”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동시에 웃었습니다.
교실 안에는 잔잔한 파도 같은 웃음소리가 번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창밖에서는, 또 한 번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마치 아이들의 마음을 축복해 주는 노래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