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종종 삶이 ‘부조리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아무리 노력해도 반복되는 문제, 의미 없이 흘러가는 일상, 예측할 수 없는 관계의 굴절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인간은 불안과 허무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이 부조리를 없애려 발버둥칠수록, 오히려 삶은 더 피로해진다. 중요한 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시지프스가 끝없는 돌 굴리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듯, 우리는 부조리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의식을 회복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마음챙김적 실존 회복’의 시작이다.
부조리의 자각 : 삶의 불합리함을 인정하는 용기
심리학에서 부조리의 인식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첫 단계로 본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이것이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자각으로 옮겨갈 때, 우리는 통제 불가능한 세상 속에서도 의식의 주체가 된다.
현대의 마음챙김(Mindfulness)은 이 ‘자각’을 통해 시작된다.
명상 지도자 존 카밧진(Jon Kabat-Zinn)은 “마음챙김은 현재 순간에 의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판단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정의했다.
즉, 부조리한 현실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용기, 그것이 마음챙김의 첫걸음이다.
이 자각이야말로, 부조리한 삶을 ‘의미의 토양’으로 바꾸는 출발점이다.
수용의 철학 : 저항 대신 깨어 있는 긍정으로 전환하다
부조리를 수용한다는 것은 패배나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삶의 통제 욕망을 내려놓고, 현재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동적 수용’이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는 고통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현실의 조건을 선택할 수 없을 때, 그에 대한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마음챙김은 그 태도의 선택을 돕는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감정은 잠시 머물다 흘러간다.
그 순간, 우리는 부조리의 중심에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저항 대신 깨어 있는 수용이야말로, 고통을 성장의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내면의 기술이다.
멈춤의 지혜 : 내면의 고요 속에서 피어나는 의미의 회복
‘멈춤’은 마음챙김의 가장 깊은 행위다.
멈춘다는 것은 도망치거나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멈추어 자신을 바라보는 행위다.
불교의 수행에서 말하는 ‘정지(靜止)’는 세상을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내적 공간의 마련이다.
현대 사회에서 멈춤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자기 회복의 기술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깊은 호흡 하나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의 의식은 다시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온다.
그 순간, 부조리는 더 이상 외부의 벽이 아니라, 의식의 거울이 된다.
멈춤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회복하고, 반복 속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한다.
웃는 시지프스의 마음챙김 : 실존의 평화를 찾아가는 길
시지프스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굴리는 돌의 무게를 알고 있었고, 그 반복이 끝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하는 자유’를 발견했다.
그의 미소는 부조리를 극복한 자의 웃음이 아니라, 부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자의 평화로운 웃음이다.
마음챙김은 이와 같다.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
그 순간, 우리는 멈춤 속에서 자유를, 반복 속에서 의미를, 부조리 속에서 평화를 발견한다.
이것이 바로 ‘시지프스 이후의 인간’, 즉 부조리를 끌어안고도 웃는 자들의 비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