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광화(狂畫)”를 넘어서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崔北, 1712-1760)은 오랜 세월 “미치광이 화가”라는 극단적 수식어로 표상되어 왔다. 관직의 보호도, 사대부 후원자의 울타리도 없이 떠돌이 화공으로 평생을 살아낸 그는, 술과 방랑, 빈곤이 뒤섞인 불안정한 생애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회화 작품들은 조선 화단의 정형화된 양식에서 탈피하여, 독자적 필의(筆意)와 과감무쌍한 표현성을 구현하고 있다. 엄격한 규범 체계가 지배하던 시대에 예술적 개성을 견지했던 구도자의 궤적, 그리고 한 예술가가 남긴 고독의 흔적은 오늘날 재조명되며 새로운 비평적 의의를 획득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국 미술사에서 ‘이단아’로 규정되어 온 최북의 실체를 재검토하고, 그가 조선 회화사의 숨겨진 천재로 평가받는 맥락을 탐색하고자 한다.

1. 최북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최북은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격변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경제 구조와 사회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던 시기였음에도 신분제적 위계는 여전히 견고하게 작동했으며, 화단은 도화서(圖畫署)와 특정 사대부 계층에 의해 규제되었다. 최북은 이러한 제도적 체계 내부에 안착하지 못한 채 유랑의 삶을 살았다. 일부 사료에 의하면 그는 양반 신분이 아니었으며, 생계의 상당 부분을 그림 판매를 통해 해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양과 지방을 오가며 정형화되지 않은 유동적 생활을 지속했고, 그의 일상은 가난, 술, 고독의 삼중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주변부적 삶의 조건이 그의 회화를 규범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관습에 구속되지 않는 예술적 감수성을 배양하는 토양이 되었다.

2. “광화가(狂畫家)”라는 표상의 형성과 본질
그에게 부여된 '미치광이 화가'라는 명명은 단순한 비하가 아니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직하게 처신했고, 주문자의 요구에도 감정을 억제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정은 당대 사회에서 괴벽(怪癖)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그의 기행적 행태는 단순한 일탈로 환원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에 예속되지 않으려는 예술가적 자존, 회화에 대한 강박적 몰입이 만들어낸 실존적 표출이었다. 최북의 방탕함을 기록한 여러 구전 자료와 달리, 그의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예민한 감각, 그리고 깊은 사유의 층위를 내장하고 있다. 이 존재론적 괴리 자체가 그를 둘러싼 신비화의 기제로 작용해왔다.
3. 독창적 회화 세계 - 진경산수·풍속·사군자의 혁신적 전개
최북의 회화 세계는 중국 화풍의 모방적 답습에서 이탈하여, 조선인의 시각으로 자연을 재해석한 진경산수, 일상의 정감을 소박하게 포착한 풍속적 표현, 그리고 강인한 필선으로 구현한 사군자 등 다층적 영역에서 독보적 성취를 보인다. 그의 산수화는 거칠지만 생동하는 운필(運筆)을 통해 자연의 형세와 기운을 정확히 포착했다. 풍속적 장면을 그릴 때에도 화려한 장식이나 의도적 미화를 배제하고, 인간 존재의 고단함과 정서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특히 사군자에서는 강렬한 농담(濃淡) 대비와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선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창조적 개성은 최북을 조선 후기 회화사의 주변부로만 위치시킬 수 없게 만든다.

4. 자해(自害) 일화와 예술적 고독의 표상
최북의 생애를 논할 때 필연적으로 거론되는 일화가 있다. 바로 그가 자신의 안구를 찔렀다는 전승이다. 주문자의 혹평을 듣고 수치심과 분노 속에서 스스로 눈을 찌른 뒤 붓을 놓았다는 기록은 사실 검증을 떠나, 그의 고독한 예술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상한다. 예술가로서의 자존과 자기 부정, 그리고 치열한 자기 인식이 중첩된 사건으로 해석된다. 당대 화가들이 관료나 후원자의 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최북은 극단적 방식으로 예술가의 독립성을 천명했던 셈이다. 이 감정적 고립과 실존적 고독은 그의 작품에 내재된 강렬한 생명력과 대비되는 또 다른 존재론적 층위를 형성한다.
5. 현대 미술사학계의 재평가와 비평적 위상
최근 미술사학계는 최북을 단순한 기인(奇人)이나 주변적 화가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선 후기 미술의 다원성과 개성 추구를 선도한 선구자로 재평가하고 있다. 사료의 희소성으로 인해 그의 전 생애를 복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나, 현존하는 작품들은 그의 감각과 기량, 정서를 명징하게 증언한다. 또한 오늘날 예술적 개성, 창작 환경의 자율성, 구조적 제약을 뛰어넘어 최북의 미술사적 위치는 더욱 단단해졌다.
최북은 단순한 기행의 화가가 아니라, 조선 후기 미술의 다양성과 창조적 가능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후기: 전북 무주에 최북미술관이 있다. 원작이 아닌 영인본만을 전시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지만, 무주 지역 출신 화가를 기념하고 예술촌 형식으로 지역 문화예술가들의 활동무대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