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근사한 별명.
이 시대 가장 중요하고도 고독한 외교관, 바로 유엔(UN) 사무총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직접 투표로 뽑는다. 하지만 전 세계 80억 인구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글로벌 리더'가 어떻게 선출되는지는, 마치 복잡한 비밀의 장막 뒤에 숨겨진 이야기처럼 여기곤 한다.
최근, 현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임기가 2026년 말에 끝남에 따라 차기 사무총장 선출 절차가 공식적으로 막을 올렸다. 마치 전 세계가 지켜보는 하나의 거대한 '캐스팅 오디션'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오디션의 무대 뒤편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민주적 절차를 넘어선, 세 가지의 놀랍고도 냉혹한 비밀이 숨어 있다. 이 비밀이야말로 오늘날 UN의 한계이자, 우리가 직면한 세계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1. 79년의 장벽: '유리천장'에 던져진 돌팔매
UN의 역사는 79년이다. 이 긴 세월 동안, 전 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책임진 수장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차기 사무총장 선출의 시작을 알리는 UN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공동 서한에는 매우 이례적인 대목이 포함되었다. "사무총장직에 단 한 명의 여성도 없었다는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는 공식적인 표명이었다. 이 말은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79년간 깨지지 않던 거대한 '유리천장'에 스스로 돌팔매를 던진 사건이다.
이는 일종의 '국제적 압박'이다. 생각해 보라. 전 세계 기업들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와 다양성을 외치고, 각국의 내각에서 여성 장관 비율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 시대에, UN이라는 '세계의 심장'이 여전히 남성 일색이라는 사실은 거대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UN 스스로가 그동안 주창해 온 성평등 의제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물론, 이 '유감 표명'이 곧바로 여성 사무총장의 탄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냉혹한 국제 정치판에서 성별 대표성은 강대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앞에 쉽게 밀려나곤 했다. 과거에도 능력 있는 여성 후보들이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지역 안배'나 '강대국들이 덜 불편해할 인물'이라는 이유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번 공식 선언은 다르다. 이는 회원국들과, 특히 후보를 최종 심사하는 5개 상임이사국(P5)에 '여성 후보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라는 강력한 윤리적, 정치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79년의 기다림. 과연 이번에는, 전 세계 여성들의 염원을 안고, 유리천장을 산산이 부술 '철의 여인'이 뉴욕 UN 본부에 입성할 수 있을까? 이는 단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UN이 표방하는 가치가 실제 현실에서도 구현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대적 시험대'이다.
2. 보이지 않는 권력: 5개국 거부권이라는 '숨겨진 비밀 투표’
우리가 아는 선거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다. 하지만 '세계의 대통령'을 뽑는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전 세계 193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가 아니라, 단 5개 국가, 즉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주도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 게임'이다.
이들이 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P5)이다. 이들이 가진 '거부권(Veto)'은 사무총장 선출 과정의 가장 놀랍고도 냉혹한 비밀이다.
이 과정은 우리가 아는 회사 임원 선출 방식과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1단계 (안보리 심사): 15개 이사국(P5 포함) 중 최소 9개국이 찬성해야 후보가 통과된다. 여기까지는 다수결처럼 보인다.
*결정적 비밀: 그러나 이 9개의 찬성표 안에 P5 중 단 한 국가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 후보는 아무리 유능하고 인기가 많아도 즉시 낙마한다.
이는 마치 전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훌륭한 후보가 단지 아파트 관리위원회 회장 한 명의 반대로 출마조차 할 수 없는 상황과 같다. P5의 거부권은 후보자의 자질이나 비전보다, 그 후보가 '자국의 국익'에 얼마나 위협적이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정치적 필터'로 작용한다.
요즘처럼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서방 대립, 그리고 중동과 아시아에서의 지정학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이 거부권의 위력은 더욱 커진다.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소신껏 맞설' 후보 대신, 모든 P5를 '가장 덜 불편하게 만드는', 즉 '정치적으로 안전하고 온건한' 인물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거부권은 UN 사무총장을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라, '5대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고위 행정관'으로 전락시키는 구조적 한계를 낳는다. 세계가 진정으로 원하는, 분열된 강대국들 사이에서 담대하게 중재하고 목소리를 낼 리더가 아니라, 5개국이 용인하는 '관리형 리더'가 선택될 위험이 크다는 말이다. 이 거부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선출 과정이야말로, UN의 숙명이자 이 시대의 비극이다.
3. 위기의 시대, 침묵할 수 없는 리더십을 갈망하다
이번 선출 절차가 시작된 시점은, 전례 없는 총체적 위기의 시대이다. 전 세계는 마치 지진과 쓰나미, 화산 폭발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복합 재난 상황에 놓여 있다.
*지정학적 분쟁: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하고 있고, 가자 지구를 비롯한 중동의 긴장은 인류애의 근간을 뒤흔든다.
*기후 위기: 매년 더 강력해지는 이상 기후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생존 문제'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환경 전문가만의 이슈가 아니라, 안보와 경제를 총괄하는 글로벌 CEO의 결단이 필요하다.
*인도적 위기: 분쟁과 기후난민이 급증하면서 전 세계는 사상 최대의 인도주의적 수요에 직면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차기 사무총장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과거의 '조용한 중재자'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지금 세계가 갈망하는 인물은, 때로는 강대국의 눈치를 보더라도 할 말은 하는 '담대한 외교관'이어야 한다.
독일 외무장관이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UN을 더 필요로 한다"라고 강조한 것은, UN이 지구상 모든 국가를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유일한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결국, 차기 사무총장은 단순한 회의 주재자가 아니라, '글로벌 위기 해결사(Global Crisis Manager)'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가령, 기후 위기 문제에서는 거대 기업과 탄소 배출국들로부터 구체적인 감축 약속을 '뜯어낼'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과 설득력이 필요하다. 분쟁 지역에서는, P5의 엇갈린 이해관계 속에서도 인도주의적 접근을 최우선으로 밀어붙일 정치적 용기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며, 마치 우리 집 앞마당에 쓰레기가 쌓이고 있는데도 이웃의 눈치만 보며 아무 말도 못 하는 무능한 반장보다는, 모두를 설득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력하고 독립적인 리더를 원한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는 UN이라는 이 거대한 배가 좌초되지 않도록, 강대국의 억압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인류애에 기반한 리더십을 절실히 요구한다.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 탄생 가능성, 5개 강대국의 거부권이라는 냉혹한 현실, 그리고 인류가 직면한 총체적 위기. 이 세 가지가 얽히고설킨 이번 선출 과정은, 21세기 국제 질서의 향방을 가를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반기문이 제8대 UN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어서 2007년 1월 1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 재임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