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이라는 이름의 가장 달콤한 독배
우리는 종종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의 거울을 닦아 들여다보면,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더 비극적이고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성공이야말로 실패의 아버지"라는 역설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이를 '무상한 자아의 우상화(Idolization of an Ephemeral Self)'라고 명명했다. 과거의 승리에 취해, 그 성공 방식을 영원불멸의 진리인 양 떠받들다가 결국 변화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 대륙을 호령했던 거대 제국, 오스만. 그들의 역사는 이 토인비의 명제가 얼마나 섬뜩하게 들어맞는지 보여주는 거대한 캔버스다. 그들은 너무나 찬란했기에, 오히려 그 찬란함에 눈이 멀어버렸다. 한때 세계의 중심이었으나 서서히 주변부로 밀려나며 고통스럽게 숨을 거둔 한 거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에 드리운 '성공의 그림자'를 살펴본다.
부러진 검: 예니체리, 수호자에서 괴물로
오스만 제국의 초기를 상상해 보라. 붉은 깃발 아래, 기독교 소년 징집 제도인 '데브시르메'를 통해 선발된 최정예 부대 '예니체리(Janissaries)'가 서 있다. 그들은 결혼도, 직업도 포기한 채 오직 술탄을 아버지로 섬기며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다. 그들의 솥단지(Kazan)가 걸리는 곳이 곧 제국의 국경이었고, 그들의 행진 소리는 유럽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들은 제국 성공의 살아있는 증거이자, 무적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 '성공의 기억'이 독이 되었다. 유럽의 군대가 머스킷 소총과 가볍고 빠른 야전 포병으로 무장하며 군사 혁명을 일으킬 때, 예니체리는 여전히 무거운 전통 의복과 구식 둔기를 고집했다. 그들에게 변화란 곧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는 것이었다. 전장에서의 패배가 거듭되어도 그들은 "우리는 예니체리다. 우리의 방식이 곧 승리의 방식이다"라는 오만에 빠져 있었다.
급기야 그들은 전장이 아닌 궁정에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술탄을 폐위하고 살해하며, 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거대한 걸림돌이 되었다. 1826년, 마흐무드 2세 술탄은 피눈물을 머금고 결단을 내린다. 자기의 손으로 만든 자식과도 같은 군대를 향해 신식 대포를 발사한 것이다. '예니체리의 대학살'이라 불리는 이 비극적인 사건은,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조직이 어떻게 그 조직을 낳은 모체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처절한 드라마였다. 스스로 진화하지 못한 칼은 결국 주인의 손에 의해 부러져야만 했다.
텅 빈 시장: 실크로드의 침묵과 바다의 소음
제국의 심장 이스탄불, 그곳의 그랜드 바자르는 한때 세계의 모든 부가 모이는 저수지였다. 동방의 비단과 향신료는 반드시 오스만의 영토를 거쳐야만 유럽으로 갈 수 있었고, 제국은 그 길목에 앉아 막대한 관세를 거둬들였다. 이것은 너무나 쉽고 확실한 성공 모델이었다. 땅만 지키고 있으면 황금이 굴러들어 왔으니까.
그러나 15세기 후반, 저 멀리 이베리아반도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바스코 다 가마와 콜럼버스 같은 모험가들이 오스만을 거치지 않는 새로운 바닷길을 열어버린 것이다. 지중해는 점차 호수로 전락했고, 대서양의 거친 파도 위로 부의 중심축이 이동했다.
안타깝게도 오스만의 지배층은 이 거대한 해일의 전조를 '찻잔 속의 태풍'으로 치부했다. "누가 저 위험한 망망대해로 가겠는가? 모든 길은 여전히 우리 땅으로 통한다." 그들은 과거의 지도만을 붙들고 있었다. 교역의 패러다임이 '육상'에서 '해양'으로 바뀌고, '중계 무역'에서 '직접 무역'으로 바뀌는 동안, 제국의 곳간은 서서히 말라갔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지리적 이점'은, 변화에 눈감은 자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았다.
굳어버린 펜: 멈춰버린 시계와 관료제
오스만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쉴레이만 대제 시절, 오스만의 관료제는 시계 톱니바퀴처럼 정교했다. 능력 중심의 인재 등용과 중앙집권적인 통치는 광활한 영토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밧줄이었다. 하지만 '완벽하다'라는 찬사는 곧 '고칠 필요가 없다'라는 착각을 불러왔다.
세월이 흐르며 그 정교했던 시스템은 녹슬고 굳어버렸다. 관직은 매관매직의 대상이 되었고, 뇌물은 행정의 윤활유가 되었다. 서구 열강들이 근대적인 국민 국가 시스템과 효율적인 행정 체계를 구축하며 질주할 때, 오스만의 관료들은 여전히 수백 년 전의 서류 양식을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했다.
뒤늦게 19세기에 이르러, ‘탄지마트(Tanzimat, 개혁)’라는 이름으로 서구화를 시도했지만, 그것은 너무 늦은 처방이었다. 이미 썩어들어가 뼈만 남은 몸에 화려한 서양식 옷을 입힌다고 해서 죽어가는 생명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한때 제국을 지탱했던 강력한 관료제라는 성공 요인이, 유연성을 잃어버리자, 제국의 숨통을 조이는 가장 무거운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다.

닫힌 창문: 300년의 시차, 지성의 몰락
가장 뼈아픈 실책은 바로 '지성의 오만'이었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오스만은 유럽보다 우월한 문화를 가졌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곧 '배울 필요가 없다'는 아집으로 변질되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바로 인쇄술의 도입 지연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유럽을 지식의 혁명으로 이끌 때, 오스만 제국은 "신성한 경전을 기계 따위로 찍어낼 수 없다"라는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무려 300년 가까이 아랍어 인쇄를 금지했다. 유럽에서 수만 권의 책이 쏟아져 나와 과학과 사상을 발전시키는 동안, 오스만의 필경사들은 여전히 손으로 책을 베껴 쓰고 있었다.
16세기, 타키 알 딘이 세운 당대 최고의 천문대가 "천사들의 다리를 훔쳐보는 불경한 짓"이라는 이유로 파괴당한 일화는 제국이 스스로 눈을 찔러버린 것과 다름없었다. 과거의 지식과 전통을 우상화하느라, 새로운 진리가 들어올 창문을 모조리 못질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벌어진 300년의 지적 격차는 그 어떤 군사력으로도 메울 수 없는 깊은 크레바스가 되었다.
우상을 깨뜨려야 미래가 보인다
오스만 제국의 쇠락은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서늘한 질문이다. "당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그 성공 방식이, 당신의 내일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예니체리의 용맹함, 실크로드의 번영, 완벽한 관료제, 고유한 문화적 자부심. 이 모든 것은 분명 제국을 위대하게 만든 일등 공신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성공을 '절대적인 것'으로 우상화하고, 변화하는 현실 앞에서 그것을 고집했을 때, 축복은 저주가 되었다. 토인비의 말처럼, 창조적인 소수가 지배적인 소수로 전락하여 기득권만을 지키려 할 때 사회는 무너진다.
마흐무드 2세의 처절한 개혁이나 탄지마트의 몸부림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단서를 남긴다. 살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생존은 과거의 영광을 박제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낡은 허물을 벗어 던지는 고통스러운 탈피의 과정에 있다.
지금 우리 손에 쥐어진 성공의 트로피를 다시 한번 바라보자. 혹시 우리는 그 트로피의 광채에 눈이 멀어, 다가오는 거친 파도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스만이라는 거인이 남긴 쓸쓸한 뒷모습은, 영원한 1등은 없으며 오직 끊임없이 변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평범하지만, 무거운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