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 비평가, 기자, 그리고 인쇄업자였던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는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인들의 삶을 다룬 대작인 『인간극(La Comédie humain)』이라는 작품을 쓴 것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은 무려 90여 편에 달하는 소설들을 하나의 시리즈 형태로 묶어놓은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유럽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이자 “인물의 재등장 기법”을 최초로 사용해 일종의 유니버스(Universe: 다양한 분야를 하나로 묶은 작품유형)를 확립한 대문호로 평가받는다.
발자크(Balzac)는 많은 예술인들과 지성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의 영향을 받은 인물로는 귀스타브 플로베르, 샤를 보들레르, 에밀 졸라, 마르셀 프루스트, 찰스 디킨스, 헨리 제임스와 같은 작가들, 폴 세잔,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화가들, 그리고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와 같은 영화감독들 등이 있다. 그리고 그는 빅토르 위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등이 존경하고 사랑한 작가이기도 하다.
발자크는 1822년부터는 가명을 쓰면서 상업소설, 통속소설이라고 할 만한 여러 편의 작품을 썼다. 그때부터 로르 드 베르니 부인과 교제하며 육체적 경험의 첫 번째 상대가 되었고 경제적 조력을 받기도 했다. 베르니 부인은 발자크보다 22살이나 많았지만 1836년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그런 관계는 계속되었다. 또 1825년부터는 다브랑테스 공작부인과 사귀기 시작했는데, 발자크의 인생을 보면 이렇게 문학적 조언자, 물질적 후원자로서의 여인이 항상 곁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발자크는 한 때 인쇄업과 출판업에 손을 댔지만 전부 실패하고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쉼 없이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는데, 매일 집에 틀어박혀 수도복처럼 긴 옷을 입고 하루에 50잔 가량의 커피를 마시며 15시간씩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하여 발자크는 20년 동안 97권이라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이런 생활속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그는 닥치는 대로 원고 청탁을 받아와서 과거에 써놓았던 글들을 대강 짜깁기해 초본을 만들어 원고료를 받아 챙기고 여유가 생겼을 때 새로 교정본을 냈다. 그 때문에 인쇄소 직원들은 늘 일을 2번 해야 했기 때문에 발자크를 싫어했다고 한다.
1830년에 『마법의 가죽(La Peau de chagrin)』을 발표하자 그때부터 작가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1832년부터는 훗날 결혼하는 한스카 부인과 교제하기 시작하였으며, 1833년에 『시골 의사(Le Médecin de campagne) 외제니 그랑데(Eugénie Grandet)』 등을 발표했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이 『외제니 그랑제』를 읽고 영감을 받아 저명한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을 썼다고 한다. 1835년에는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 『서른 살 여인(La Femme de trente ans)』 등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자신의 작품을 하나로 집대성하려는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1846년에는 한스카 부인이 임신하였지만 사산하고 만다. 그리고 그 해에 1829부터 1848년까지 쓴 90여 편의 작품들을 모아 『인간극(La Comédie humaine)』이라는 대작을 출간했다. 1850년 3월에는 마지막 부인인 한스카 부인과 결혼을 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미 병약해진 그의 모습을 보고 한스카 부인이 동정심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5월에 파리로 돌아와 살림을 차렸지만 이미 발자크는 와병 중이었다. 1850년 8월 18일 며칠을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있던 그는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가 죽자 같은 시대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그의 죽음에 대해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인간극이라는 이 방대하고 비범한 작품의 저자는 혁명적인 작가들의 강렬한 일원이 되었다”라는 조사(弔辭)를 남겼다.
자신의 작품 전체를 사회를 이해하는 도구로 삼을수 있도록 풍자적이며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했던 그의 저서들은 오늘날 그를 대문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리하여 빅토르 위고는 “발자크라는 이름은 미래에 우리 시대를 알리는 빛나는 흔적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고 평했고, 카를 마르크스는 “그의 작품은 유쾌한 역설로 가득한 소설이다.”고 평했고,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나는 모든 역사학자, 경제학자, 통계학자를 합친 것보다 발자크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평했고, 샤를 보들레르는 “발자크가 소설이라는 평범한 장르를 놀랍도록 흥미롭고 숭고한 경지로 끌어올린 것은 그가 거기에 자신의 모두를 쏟아부었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위에서 보듯 발자크는 22살이나 많은 부인과 결혼하고, 계속해서 연상의 여인들과 사귀거나 결혼한 후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는 등, 비정상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런 비정상적인 여성 편력사는 『인간극(La Comédie humain)』이라는 방대한 작품을 쓰는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는 한 단계 더 높이 오르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혹시라도 다양한 직업을 가지며 살아온 떠돌이 인생이라고 자탄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실망하지 마시라. 그대의 다양한 경험은 더 높이 오르기 위한 필수조건이 될 것이다.
-손 영일 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