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기획] 스테이블 코인, 토큰화, 그리고 한국 기업의 생존 전략
세계 통화 질서가 재편되는 순간,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세계 금융 질서가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인 국채·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은 기존 은행 시스템을 넘어서는 새로운 ‘화폐 생태계’를 구축하며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동시에 콘텐츠, 부동산, 심지어 개인의 잠재력까지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되는 ‘토큰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자산의 개념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한국 기업과 개인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새로운 금융 무기
비트코인이 등장한 지 15년. 당시만 해도 가격 변동성이 큰 실험적 자산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글로벌 금융 시장의 중심축을 바꾸는 인프라로 성장했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불러온 더 큰 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비트코인이 아니라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다. 테더(USDT), 서클(USDC)로 대표되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국경을 넘나드는 송금, 무역결제, 기업 간 정산에서 기존 은행망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들 발행사가 매입하는 미국 국채 규모는 이미 웬만한 중소 국가의 외환보유액을 넘어섰다. 미국 정치권이 스테이블 코인을 ‘전략자산’으로 규정하는 이유다. 미국 국채 수요를 유지하고, 중국의 금융 압박을 우회하며, 디지털 시대에도 달러 패권을 지속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가 된 것이다. 기존 은행은 예금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용자들은 더 높은 이자와 더 빠른 송금을 제공하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이동하고, 기업은 수수료와 시간의 장벽이 없는 블록체인 기반 결제를 선택한다. 은행들이 예금 토큰 발행 등 새로운 방식을 검토하지만, 빅테크와 블록체인 기업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토큰화’가 가져올 자산의 대전환
스테이블 코인이 결제 시장을 바꿔 놓았다면, 토큰화(Tokenization)는 자산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 회장은 “모든 자산은 토큰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사실상 전략의 선언이다. 부동산은 가장 빠르게 토큰화될 분야다. 강남 아파트 한 채를 수백, 수천 개의 토큰으로 쪼갠다면, 1억 원이 없는 사람도 ‘강남 아파트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 소액으로도 고가 자산에 투자할 수 있고, 이는 유동성을 극적으로 높인다. 자산의 구조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더 급진적인 변화는 ‘개인의 미래 가치 토큰화’다. 성적, 잠재력, 콘텐츠 활동, 경력, 팬덤까지 토큰으로 발행하면 개인도 하나의 경제 주체이자 자산이 된다. 스타트업, 크리에이터, 심지어 학생까지 스스로를 토큰화하고 투자받는 시대가 열린다. 한국은 교육열이 높고 콘텐츠 산업이 강하며 디지털 혁신 속도가 빠르다. ‘개인 자산 토큰화 시장’은 향후 한국이 글로벌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가장 큰 영역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네이버와 업비트 두나무의 지분 교환은 단순한 협업이 아니다. 네이버는 거대 플랫폼, 두나무는 국내 최대 암호자산 거래소를 보유한다. 이는 스테이블 코인–블록체인–쇼핑–콘텐츠–광고로 이어지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전략적 결합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에 하드웨어 월렛을 탑재하며 세계 최초로 암호자산 보관을 기본 기능화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 1위 기업이 스테이블 코인 결제를 본격적으로 지원한다면, 이는 단순한 기능 업데이트가 아니라 ‘모바일 금융 질서’의 변화가 된다. 한국에서 디지털 자산 규제가 강하고 원화 스테이블 코인에만 집중한다는 문제는 여전히 크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패권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지금, 오히려 한국 기업에게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마치 초창기 인터넷 규제 환경이 미국 빅테크를 탄생시켰던 것처럼, 지금의 디지털 자산 전환기는 한국 기업에도 새로운 진입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 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결제·송금·투자·저축·자산 관리 등 금융의 모든 기능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개인은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스테이블 코인은 기존 은행 계좌의 편의성을 넘어서는 ‘로우 프릭션(low-friction) 화폐’로 자리 잡고 있고, 비트코인은 단순한 투기 수단이 아니라 “디지털 금”으로 포지션을 공고히 하고 있다. 미국 ETF 승인 이후 기관 매수세는 더 강화되었고, 장기 보유자는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결국 개인이 준비해야 할 방향은 두 가지다.
첫째, 금융 자산의 일부를 디지털 자산 기반 구조로 옮기는 적응 전략.
둘째, 토큰화 시대에 자신의 역량·경력·콘텐츠를 어떻게 자산화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
디지털 자산 시장은 이전의 부동산·주식과 달리 ‘접근성’이 매우 높고, 조기 참여자가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구조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국가 전략
현재 한국 정부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에 집중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원화가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달러·유로·위안의 패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원화 기반 디지털 화폐가 해외에서 사용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전략적 선택이다. 네이버·카카오·삼성 같은 기업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 결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한국이 아시아의 토큰화 허브, 디지털 자산 결제 테스트베드, 웹3 기반 콘텐츠 국가로 도약하도록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한국은 스마트폰, 콘텐츠, 플랫폼, 블록체인 인프라를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나라다. 지금처럼 규제 중심의 접근만 유지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략을 전환한다면 한국 기업은 스테이블 코인과 토큰화 시대의 핵심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금융 질서는 이미 시작되었다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의 새로운 금융 무기다.
토큰화는 자산의 개념을 다시 쓰는 혁명이다.
비트코인은 부의 저장 장치이자 디지털 시대의 금이 되고 있다.
이 세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국 기업은 선택의 기로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 → 허용 → 주도’로 이어지는 정책 전환이며,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의 방향을 읽고 디지털 자산 생태계로 열린 새로운 기회를 활용하는 일이다. 다가오는 변화는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가장 먼저 준비된 자가 가장 많은 것을 갖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