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한정찬] (시) 삶에 고인 언어들 2

[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시인 한정찬의 "삶에 고인 언어들 2"

 

 

1. 상처(傷處)

 

 

믿음에

상처는

꽃이 되고

힘이 되어

믿음의

노래가 됩니다.

 

소망에

상처는

빛이 되고

위안이 되어

소망의

용기가 됩니다.

 

사랑에

상처는

눈이 되고

귀가 되어

사랑의

희망이 됩니다.

 

살면서

상처 날 때가

어디 한두 번인가요.

상처는

곧 치유가 됩니다.

 

 

2. 시련(試鍊)

 

 

시련은

고통의 시작이다.

 

삶에

버거운 짐 지고

가파른 길에

오르다 보면

몸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삶에

지식과 행동이

도리와 일치가

예와 어긋날 때는

어둠이다.

앞이 안 보인다.

 

삶이 힘들 때

상서로운 구름

눈썹 앞

부드러운 바람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

이 모두가

지상의 스승이다.

 

시련은

고통의 마침이다.

 

 

3. 새길

 

 

처음이다.

두려워 말자.

 

불안의 방향이라고

몸까지 흔들리지 말자.

 

더 보탤 것도

더 깎을 것도 없는

역경이 몰려와

신념처럼

요지부동으로

시간을 점유해도

새길은

희망의 시작이다.

개척의 지름길이다.

 

처음이다.

두려워 말자.

 

 

4. 반딧불이

 

 

잔별이 참 많은

하늘의 별 밭에는

영혼도 누구에게

다 줄 형국이다.

 

하늘에 이는

바람 소리가

사랑의 연서를

웃으며 쓴다.

 

윤슬이 하도 많은

연못 위에는

마음도 누구에게

다 빼앗길 판국이다.

 

도랑에 이는

물결 소리가

사랑의 연서를

울며 읽는다.

 

* 반딧불이 : 반딧불잇과의 곤충. 애벌레는 맑은 물에 살며, 변태한 엄지벌레는 발광기(發光器)가 있어 여름밤에 반짝거리며 날아다님. 개똥벌레.

 

 

5. 농기구

 

 

농기구는

로봇이 일어나

살아가고 있음을

각인하는 동영상이다.

 

농기구는

그림을 그려낸

지로 없는 청구서의

3D 프린터다.

 

농기구는

흑백논리에 맞서

삶의 흔적을 따라

떠도는 행성이다.

 

농기구는

증거 남기고

시공에 복제되는

AI의 산물이다.

 

* 3D 프린터(3D printer) : 도면을 바탕으로 3차원의 입체 물품을 만들어내는 기계.

* AI :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학습, 추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

 

 

6. 숫돌

 

 

투박한 것 밀고

무딘 날 벼르며

숫돌은

들숨 날숨으로

한숨을 쉰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 한 채를

진단하는

처방전이 있을 법한데

숫돌은

세월은 헛기침하며

산골을 넘었다.

 

닳고 닳아야만

센 날을 세우고

숫돌은

와르르 달려들며

두 눈이 시퍼렇다.

 

망태기 밖으로

불쑥 내민

조선낫 날에도

숫돌은

걱정 반 안도 반

긴장하고 있다.

 

투박한 것 밀고

무딘 날 벼르며

숫돌은

들숨 날숨으로

한숨을 쉰다.

 

* 숫돌 : 칼 따위의 연장을 갈아서 날을 세우는 데 쓰는 돌.

 

 

7. 흙발

 

흙발은

생명 살리는

시작이다.

삶의 꽃이다.

 

흙발은

흙덩이 깨서

흙가루가 되는

흙갈이

시작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흙 갈 때

향기 퍼지면

흙발은

음각의

꽃이 되어

낙인을 찍다가

스멀스멀 흔들려

바람의

표적이 되고

시간의

흐림이 된다.

 

흙발은

생명 살리는

시작이다.

삶의 꽃이다.

 

 

8. 토란(土卵)

 

 

토란 잎에

구르는 물방울은

은구슬입니다.

 

토란 잎은

비 오는 날 우산으로

웃음입니다.

 

올해는

그 유년 시절을 호출해

토란 농사를 지었습니다.

 

올여름 내내

토란 잎에 구르는

은구슬을 바라보며

유년 시절 추억을

그리워했습니다.

 

토란대 정성으로

손질하면

귀한 나물이 되고

토란 알줄기 캐

국 끓이면

알토란 국이 됩니다.

토란집산지에서

토란을 재배해

아이들 키우고 공부시켜

출가시켰다.’고 말한

농부 이야기가

문득 떠오릅니다.

 

* 토란(土卵) :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80-120cm, 땅속에 살이 많은 알줄기가 있음. 잎은 두껍고 방패 모양이며 열매를 맺지 않음. 뿌리줄기는 식용함.

 

 

9. 가지치기

 

 

농부는

고개 든 가지는

자르고

고개 숙인 가지는

살린다.

 

철모르고

웃자란가지는

나무 세력 빼앗아

튼실한 열매 달지 못한다.

 

살아오면서

내가 혹여 웃자란가지처럼

행세를 해온 일 없지는 않았는가.

 

웃자란가지가

굵어 힘 있다고

으스대며 고개 쳐들지만

농부는 사정없이

잘라버린다.

 

이제야 알겠네.

정말 알겠네.

정말 필요한 가지는

고개 든

웃자란가지가 아닌

고개 숙인

약한 가지였음을.

 

* 가지치기(전지, 剪枝) : 나뭇가지 일부를 자르고 다듬는 일.

 

 

10. 옹기(甕器)

 

 

흙과 물이

불을 만나면

태워서 탄생한

빛나는

성체가 됩니다.

 

, 성스러운

혼불의 정신입니다.

부활의 탄생입니다.

 

감동입니다.

곡선은

우주를 빼닮았습니다.

 

위대합니다.

쓰임새는

우주를 모두 담습니다.


* 옹기(甕器) : 질그릇·오지그릇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한정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정찬

()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시집 한 줄기 바람(1988)29, 시전집 2, 시선집 1, 소방안전칼럼집 1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소방문화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작성 2025.12.06 22:17 수정 2025.12.0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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