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인문학] 엄마와 딸

저희 엄마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습니다. 절친인 고등학교 동창은 학교 다닐 때, 엄마 때문에 제가 부러웠다고 합니다.


왜? 

너희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네 머리맡에 그날 입고 갈 옷이랑 양말 개어 놓으셨다고 했잖아.


교복 자율화 시기, 머리맡에 개어진 옷은 딸이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하고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게 하려는 엄마의 세심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무조건 그 옷을 입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기도 했습니다. 


전 친구가 내심 부러웠습니다. 구속받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자유로움이 저에겐 허락되지 않는 사치였으니까요. 하교 후 돌아와도 늘 비어있는 집에서 배고픈 동생을 위해 밥까지 해야 했던 친구의 속사정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란 우리는 어떤 엄마가 되었을까요?


공부 이외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해 준 엄마 덕분에 편안하게 컸지만, 제 딸들은 저처럼 살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옷장에서 입고 싶은 옷 꺼내 입고, 라면도 혼자 끓여 먹을 줄 알고, 혼자 버스도 타고 다닐 수 있는 독립적인 아이로 자라려면 한쪽 눈을 감은 채 모른 척하는 시간이 필요했지요.


반면 학창 시절 그렇게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이던 친구는 아이를 낳고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나도 다 큰 아이들 저녁을 챙겨줘야 한다고 일찍 집에 들어가는 그 친구를 보며, 우리를 이런 엄마로 만든 우리들의 엄마를 떠올립니다. 


형제 많은 장녀로 태어나 집안일과 동생들까지 책임지느라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엄마는 배움이 꺾인 결핍을 절 통해 채우려 했습니다. 친구의 엄마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듣지 못했지만 그 엄마에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결핍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스신화의 다나오스의 딸들처럼 ‘밑 빠진 독에 물붓는’ 형국과 같지요.


많은 자기개발서에서는 결핍이 성장의 동력이 된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멈추지 못할 때 생기고 대부분 멈추지 못합니다. 


융 심리학자, 로버트 존슨은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서

‘자신의 연인이자 배우자에게 신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은 자신의 어두운 면인 두려움이나 근심거리를 투사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라고 했는데, 자녀에게 신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결핍을 투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자녀는 낯선 사람이 되어 가고 자신의 노력이 허망해지는 순간이 오니까요. 


엄마의 인생을 갈아 넣어 공부시킨 저도 엄마를 크게 실망시키고 떠났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극구 반대하는 결혼을 해버렸죠. 엄마의 보호 안에서 누렸던 편안함 대신 택했던 자율적인 생활은 상상보다 훨씬 가혹했고 결핍이 이끈 섣부른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늦은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결핍은 채우는 대신 받아들이고 뛰어넘어야 한다는 걸, 그래서 자식에게 어떤 결핍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걸, 엄마와 딸은 서로 다름을 순순히 인정해야 각자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K People Focus 000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차경숙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수석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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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12.09 00:28 수정 2025.12.0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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