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수능 역사상 처음으로 인문계열 학생이 표준점수 최고를 차지했다는 사실인데, 이는 사회탐구 과목의 표준점수가 과학탐구 과목보다 높게 형성되는 특이 현상 때문이다.
표준점수 수석을 차지한 학생의 구체적인 선택 과목과 성적, 그리고 그가 의대가 아닌 경제학부를 지망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또한, 수학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탐구 과목 선택이 입시에서 중요한 전략적 요소가 되었다. 아울러, 이제 만점자가 아니더라도 탐구 선택에 따라 최고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전략이 실력을 뒤집은 날, 2026 수능이 우리에게 던진 서늘한 농담
차가운 겨울바람보다 더 매섭게,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성적표 앞에서 일종의 현기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숫자가 주는 놀라움이 아니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견고한 입시의 성벽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과가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마치 자연의 법칙처럼 여겨지던 그 공식이 깨졌다. 사상 처음으로, 인문계열 학생이 표준점수 전국 수석이라는 왕관을 썼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이변일까? 아니면 거대한 지각 변동의 서막일까. 오늘, 차가운 데이터 속에 숨겨진 뜨거운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이 잔혹하고도 기묘한 입시라는 게임의 법칙에 대해, 당신에게 말을 걸어보고자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서다: 과학을 압도한 사회탐구의 반란
우리는 오랫동안 ‘수학 잘하고 과학 잘하는 아이’가 입시의 정점에 선다고 믿어왔다. 그것은 일종의 신화였다. 난해한 기호와 복잡한 계산을 해내는 이과생들이 표준점수라는 전리품을 독식하는 구조, 그것이 우리가 아는 수능의 문법이었다. 그러나 2026년, 이 문법은 처참히 파괴되었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 현상이 발견된다. 사회탐구 과목들의 평균 표준점수 최고점이 70.33점으로, 과학탐구의 69.88점을 넘어선 것이다. 심지어 ‘공부의 신’들이나 건드린다는 과학탐구 Ⅱ과목마저 사회탐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이상 ‘이과 프리미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사회탐구를 선택한 인문계열 학생이, 가장 어려운 과학 문제를 풀어낸 학생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문과생들에게 희소식이 아니다. 이것은 ‘노력의 총량’보다 ‘어떤 전장을 선택하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전략의 시대로 우리가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조언이 될 수 있는지, 이 결과는 서늘하게 경고하고 있다.
소신이라는 이름의 파격: 의대 블랙홀을 거부한 소년
이 혼란스러운 입시의 전장 한가운데, 묵직한 울림을 주는 한 소년이 서 있다. 표준점수 426점, 전국 수석의 주인공은 국어와 수학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고, 경제와 사회문화라는 숲을 지나 정상에 올랐다.
세상은 으레 그렇듯 그에게 물었을 것이다. “어느 의대에 갈 거니?” 대한민국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의 종착지는 맹목적으로 ‘의대’여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 그 거대한 블랙홀 앞에서 그는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부를 선택했다.
그는 원래 그런 아이였다고 한다. 학생회장으로 친구들을 이끌고, 지역 학생회 의회 의장으로 목소리를 내며, 점수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시민’으로 성장해 온 아이. 그에게 수능 점수는 의사 가운을 입기 위한 티켓이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경제학자의 길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모두가 안정과 부를 좇아 의대로 향할 때, 자신의 소신을 지킨 이 소년의 선택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꿈은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강요한 것인가?”
만점보다 높은 점수: 시스템이 만들어낸 기묘한 역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조금 더 잔인해지고, 동시에 흥미로워진다. 우리는 흔히 ‘만점’이 ‘1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를 다 맞혔으니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2026 수능은 이 상식을 비웃는다.
가정을 해보자. 국어와 수학을 다 맞고, 탐구 과목으로 생명과학Ⅰ과 세계 지리를 선택한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이 탐구에서 한두 문제를 틀려 만점을 놓쳤다 하더라도, 그가 받는 표준점수 총합은 431점에 달할 수 있다. 실제 만점자인 최 군의 426점보다 무려 5점이나 높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완벽함’이 ‘최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과목을 선택했느냐는 ‘운’과 ‘전략’이, 땀 흘려 모든 문제를 풀어낸 ‘노력’을 압도하는 순간이다. 만점자가 1등이 될 수 없는 이 기묘한 모순. 이것은 우리 아이들이 싸우고 있는 이 입시 판이 얼마나 복잡하고, 때로는 얼마나 부조리한 확률 게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 그것은 바로 ‘선택’이라는 이름의 운명이다.
무너진 수학의 왕좌, 그리고 여전한 욕망의 그림자
과거 수능을 지배했던 절대 군주, ‘수학’의 위상도 흔들렸다. ‘불수능’이라 불렸던 2024년, 수학 만점자의 표준점수는 148점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139점으로 뚝 떨어졌다. 수학 한 과목만 잘하면 대학 간판이 바뀌던 시절은 저물어가고 있다. 수학의 힘이 빠진 자리를 탐구 과목의 전략적 선택이 채우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의 욕망이다. 수석인 한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만점자 4명은 모두 자연 계열이었고, 그들의 목표는 한결같이 ‘의대’였다. 특히, 서울대 의대 진학을 위해 치밀하게 Ⅱ과목을 선택하고 가산점을 챙긴 그들의 전략에서, 우리는 섬뜩한 치열함을 본다. 심지어 영재학교 출신 재수생의 정보를 학교 차원에서 숨기려 한다는 의혹은, ‘의대 쏠림’이라는 이 사회적 병리 현상이 얼마나 깊은 곳까지 곪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수시 납치라는 비극: 이기기 위해 졌어야 했나
우리가 마주해야 할 비극은 ‘수시 납치’라는 그림자다. 수능에서 인생 최고의 성적, 소위 ‘대박’을 터뜨린 아이들이 웃지 못하고 있다. 이미 수시모집에 합격해 버리면, 정시로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원천 봉쇄되기 때문이다.
평가원이 만점자의 신상을 비공개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고의 성과를 냈음에도, 그 성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곳에 ‘납치’되어야 하는 상황. “너무 잘해서 탈락”이라는 이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 앞에서, 수험생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가.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시스템, 과연 이것을 공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26학년도 수능은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제 입시는 ‘성실함의 대결’을 넘어 ‘정보와 전략의 전쟁’이 되었다. 국영수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표점 구조를 이해하고, 유리한 과목을 선점하며, 수시와 정시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만 살아남는다.
그러나 나는 이 차가운 전략 분석 끝에, 다시 한번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전략이 실력을 이기고, 선택이 노력을 압도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의 ‘진짜 실력’과 ‘꿈’은 어디에 있는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가 모든 진실을 말해주지도 않는다. 의대를 포기하고 경제학을 택한 최 군의 그 빛나는 눈동자가, 점수 역전의 계산식보다 더 오랫동안 우리 기억에 남기를 바란다. 결국 입시도, 수능도,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작은 관문일 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426점이라는 점수가 아니라, 그 점수를 들고 어디를 향해 걸어가느냐는 방향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