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NN TURK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DNA 분석을 통해 히로시마 원자폭탄 희생자의 신원이 80년 만에 확인되었다.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로 실종된 13세 소녀 카지야마 하츠에(Kajiyama Hatsue)의 신원이 확인되었는데, 가나가와 대학에서 머리카락 샘플 DNA를 그녀의 91세 여동생 DNA와 비교하여 신원을 확정했으며, 이는 원폭 희생자의 신원을 DNA 방법으로 확인한 최초의 성공적인 사례이다. 이 사례는 히로시마 평화 기념 공원에 보관된 약 7만 명의 미확인 희생자 유해에 대한 추가 신원 확인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80년의 침묵을 깬 속삭임: 어느 히로시마 소녀의 귀환
시간은 망각의 가장 강력한 동맹군이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의 비극은 종종 차가운 통계나 무미건조한 기록 뒤로 숨어버린다. 우리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의 하늘을 뒤덮었던 버섯구름을 기억하지만, 그 아래에서 증발해 버린 수많은 ‘이름’들의 개별적인 고통까지는 닿지 못한다. 그렇게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남겨진 이들의 가슴 속에는 답을 얻지 못한 그리움만이 화석처럼 굳어져 갔다. 하지만 때로는 과학이라는 차가운 이성이 과거에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려, 가장 인간적이고 뜨거운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야기는 단순한 신원 확인 뉴스가 아니다. 그것은 지옥 같은 혼란 속에서 잃어버렸던 한 소녀의 이름을 되찾아준 사건이자, 엉켜버린 역사의 실타래를 80년 만에 풀어낸 서사시다. 히로시마의 비극 속에서 사라졌던 13세 소녀, 그녀가 DNA라는 현대의 지문을 통해 마침내 가족의 품으로, 그리고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돌아왔다. 이 기적 같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세 가지 진실에 귀를 기울여 본다.
시간의 벽을 녹인 과학의 눈물: 불가능을 넘은 최초의 증언
80년. 한 사람이 태어나 생을 마감하기에도 충분한 긴 시간이다. 그 세월 동안 유해는 흙과 먼지, 그리고 원자폭탄이 남긴 끔찍한 열기와 방사능 속에서 침묵했다. 과학자들조차 고개를 저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그것도 피폭의 현장에서 수습된 유기물에서 온전한 DNA를 추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으로 여겨졌다. 열은 생명의 코드를 파괴하고, 방사선은 흔적조차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신원 확인은 그 ‘불가능’이라는 벽을 무너뜨렸다. 이는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중 유전자 분석을 통해 신원이 밝혀진 최초의 사례다. 이것이 주는 울림은 실로 거대하다. 단순히 기술적 성취를 넘어선다. 그것은 80년 전 그날, 멈춰버린 시곗바늘을 다시 움직이게 한 것과 같다.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흔적조차 찾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 가는 수많은 유족에게, 과학이 건네는 뒤늦지만 가장 따뜻한 위로다. “당신의 가족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미치코와 하츠에: 뒤바뀐 이름, 80년 만에 바로잡힌 슬픈 역사
이 기적의 중심에는 한 가족의 사무치는 염원과 비극적인 혼란이 얽혀 있다. 이야기는 1945년 당시 13세였던 소녀, 카지야마 하츠에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그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을 나섰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잔해를 뒤졌고, 소녀의 흔적이라 믿어지는 유해를 찾았다. 하지만 전쟁 직후의 참상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선 것이었다.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타버린 그곳에서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놀랍게도 평화기념공원에 안치되어 있던 그 유해는 지난 80년간 ‘카지야마 하츠에’가 아닌 ‘카지야마 미치코’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기록상으로는 전혀 다른 소녀의 유해로 분류되어 있었다. 하츠에의 조카인 카지야마 슈지의 끈질긴 요청이 없었다면, 이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연구팀은 ‘미치코’의 것으로 알려진 머리카락 샘플에서 극적으로 DNA를 추출하였고, 이를 하츠에의 91세 친언니의 DNA와 대조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80년간 미치코로 불리며 잠들어 있던 유해는 바로 하츠에였다. 과학은 80년 동안 엇갈렸던 비극적인 오류를 단숨에 바로잡았다. 살아남은 91세 언니가 느꼈을 감정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동생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제사를 지내야 했던 세월,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동생의 진짜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된 회한과 안도감. 이것은 단순한 행정적 정정이 아니다. 지옥 같았던 그날의 혼란이 얼마나 많은 오류와 슬픔을 잉태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증언이다.

7만 개의 침묵하는 항아리: 이제 시작된 희망의 여정
단 한 명의 이름을 되찾은 이 사건이 이토록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히로시마가 품고 있는 비극의 규모가 여전히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지하 납골당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약 7만 명의 희생자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그들은 이름도, 나이도, 가족도 잃어버린 채 그저 ‘원폭 희생자’라는 거대한 집합명사 속에 갇혀 있다.
이번 하츠에 양의 사례는 우리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저 7만 개의 유골함 속에, 하츠에처럼 이름이 뒤바뀐 채 잠들어 있는 영혼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신원 미상’이라는 꼬리표 뒤에, 혹은 엉뚱한 이름표 뒤에 진짜 가족을 그리워하는 영혼들이 숨죽여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히로시마시는 이번 성공을 계기로 유족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추가적인 DNA 검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굳게 닫혀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셈이다.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모든 유해의 신원을 밝혀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의 성공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작은 촛불 하나를 켰다. 그 불빛은 7만 명의 영혼과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속삭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