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칼럼] “시골 가서 농사나 짓고 살까?” - 은퇴 공직자의 잘못된 판단

퇴직서류를 접는 순간 떠오르는 가장 위험한 상상

 공직의 시간과 농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귀농은 힐링이 아니라 산업이다

 

 

퇴직서류를 접는 순간 떠오르는 가장 위험한 상상

 

“이제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지을까.”
은퇴를 앞둔 공직자들의 술자리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말이다. 이 문장은 담담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위험한 오해가 숨어 있다. 평생 국가 시스템 안에서 일해 온 시간이 만들어낸 착각이다. 행정 경험이 인생 전반을 커버해 줄 것이라는 믿음, 농사는 성실함만 있으면 된다는 낙관, 시골은 돈이 적게 든다는 막연한 상상이 겹쳐진다. 이 짧은 문장은 인생 2막을 좌우할 수 있는 선택치고는 지나치게 가볍다.

공직 은퇴는 대부분 예측 가능하다. 정해진 연령, 정해진 절차, 정해진 퇴직금과 연금이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미래가 계산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계산의 끝에 시골과 농사가 들어간다. 도시는 피곤했고, 조직은 답답했고, 자연은 늘 정답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연은 답을 주지 않는다. 자연은 결과만 남긴다. 수익이 나면 살 수 있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은퇴 공직자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은 바로 이 지점이다. 농사를 ‘삶의 방식’으로만 상상하고, ‘경제 활동’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공직의 시간과 농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한국 사회에서 귀농·귀촌은 오래된 담론이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와 고위험 노동을 경험한 공직자 집단에서 그 욕망은 더 강하게 나타났다. 농촌은 쉼의 공간, 공동체의 공간, 속도가 느린 공간으로 소비돼 왔다. 그러나 현실의 농촌은 이미 고도로 산업화된 공간이다. 농업은 더 이상 땅과 땀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자본, 기술, 유통, 정책, 기후 리스크가 얽힌 복합 산업이다.

은퇴 공직자들은 제도와 정책을 잘 안다. 그래서 오히려 착각한다. 지원사업이 많고, 보조금이 있고,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니 진입 장벽이 낮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농업 정책은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정책은 조건을 맞춘 사람에게 기회를 줄 뿐이다. 그 기회를 수익으로 전환하는 능력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또 하나의 배경은 공직 문화다. 공직 사회는 결과보다 절차를 중시한다. 실패의 책임은 개인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하지만 농업은 정반대다. 절차가 아무리 정교해도 결과가 나쁘면 소득은 없다. 공직에서 익숙해진 안정감은 농촌에서 빠르게 무너진다. 그 간극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내려간 귀농은 생활비와 자존감을 동시에 갉아먹는다.

 

 

귀농은 힐링이 아니라 산업이다

 

농업 전문가들은 귀농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동기 착각’을 꼽는다. 농사가 좋아서가 아니라 도시가 싫어서 내려오는 경우, 실패 확률이 높다. 지역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교육은 받았지만 실제 경영 감각이 부족한 사례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반면 일부 성공 사례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농사를 직업으로 다시 설계했다는 점이다. 은퇴 전부터 농업을 공부했고, 최소 3~5년의 적자 기간을 견딜 자본을 준비했고,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들은 “농사는 노후 대안이 아니라 새로운 창업”이라고 말한다.

통계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귀농 후 5년 내 이탈 비율은 여전히 높다. 특히 60대 이상, 단독 귀농, 작목 선택이 단순한 경우 실패 확률이 더 올라간다. 농촌은 정서적으로 따뜻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냉정하다. 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은퇴 공직자의 귀농은 낭만이 아니라 위험한 도박이 된다.

 

 

준비 없는 귀향이 남기는 씁쓸한 결말

 

문제의 핵심은 ‘판단 구조’다. 은퇴 공직자들은 의사결정 경험이 풍부하다. 그러나 그 경험은 조직 내부의 판단 구조에 최적화돼 있다. 농업은 시장 중심의 판단을 요구한다. 수요를 읽고, 가격을 예측하고,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 행정 논리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시간 감각이다. 공직의 시간은 월급 단위로 흐른다. 농사의 시간은 계절 단위로 흐른다. 한 번의 선택이 1년 수입을 좌우한다. 잘못된 작목 선택, 기후 변수, 유통 실패는 즉시 회복되지 않는다. 이 리스크를 감당할 준비 없이 내려가는 것은 무모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위치 인식’이다. 공직에서의 직급과 농촌에서의 위치는 전혀 다르다. 농촌에서는 나이도, 경력도 자산이 아니다. 생산성과 관계, 신뢰가 전부다. 이 전환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갈등이 생기고, 고립이 시작된다.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오거나, 경제적 어려움 속에 남게 된다.

 

 

 

 

퇴직 후 농업은 귀농이 아니라 새로 취업할 준비이다.

 

시골에서 농사 짓고 살겠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준비 없이 그 말을 실행하는 순간이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재설계의 시작이다. 공직자의 경험은 농업에서도 분명 자산이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농사를 대체하는 능력’이 아니라 ‘농사를 배우는 데 쓰일 도구’일 뿐이다.

은퇴 후 삶을 자연에 맡기고 싶다면, 먼저 숫자와 시장을 직시해야 한다. 농촌은 도피처가 아니라 또 다른 경쟁의 공간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귀농은 실패가 아니라 선택이 된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가 아니라 “농업이라는 산업에 다시 취업할 준비가 됐는가”라고.

 

 

작성 2025.12.22 06:08 수정 2025.12.22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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